하나님의 향기가 스며나오는, 숨을 쉬는 질그릇이고 싶다.
거칠고 투박한 손맛의 매력에 빠져
도자기를 빚으며
오랜 시간을 보낸 시절이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낸 자국,
거친 질감과 흙 내음.
그 투박한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날들.
항아리, 머그잔, 다기 세트, 접시까지
온갖 그릇을 만들어내던 그때,
나는 마치 흙과 하나가 된 듯했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이야기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머그잔을 가장 즐겨 만들었다.
정성껏 다듬은 흙덩이가
800도의 고열을 견뎌낸 뒤,
비로소 그릇의 형태를 갖추고,
유약을 입혀 다시 가마에 들어가는 순간—
가슴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질감과 광택, 투명도, 색감—
오직 유약 하나의 선택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릇이 태어났다.
흙빛, 흰빛, 청빛, 흑빛....
각기 다른 그릇들은
저마다의 숨결과 이야기를 품고
여러 빛깔의 생명을 입고 완성되었다.
하루를 여는 아침,
나는 그 컵들 사이에서
나만의 작은 의식을 치른다.
컵을 고르는 일.
바람 부는 날엔 바람이 이유였고,
비 오는 날엔 빗소리가 핑계였다.
햇살 좋은 날엔 따뜻한 빛이
내 손길을 이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커피인데도
컵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유약이 서로 다른 컵에
커피를 담아
하나하나 마셔보았다.
놀랍게도,
정말 컵마다 미묘하게 다른 맛이 났다.
그날 이후,
자연스레 손이 가는 컵이 생겼고,
커피는 늘 그 컵에 마시게 되었다.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에 비유한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까.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 욥기 10장 8~9절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다.
질그릇은,
아직 유약을 바르지 않은,
초벌 상태의 그릇이다.
거칠고 투박하며
흙냄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쉽게 깨어진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맛이 그대로 스며드는 그릇.
물을 담으면 물맛이,
커피를 담으면 커피맛이,
술을 담으면 술맛이 스며든다.
그릇이 그 맛을 기억하는 것이다.
질그릇에 커피를 담으면
커피에 흙맛이 배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커피의 향이 그 안에 깊이 스며들고,
그때부터 그 질그릇은
‘커피 그릇’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맛을 내는 질그릇'이고 싶다.
질그릇에는
또 하나의 은밀한 매력이 있다.
'숨을 쉰다는 것이다.'
숨을 쉰다는 것은
안과 밖이 통한다는 뜻이고,
그 안에 담긴 것이 천천히 스며들 듯
세상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져
그분의 향기가
내 삶을 통해 번져 나가는—
나는, 그런
'숨 쉬는 질그릇'이고 싶다.
질그릇은 쉽게 오염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깨진다.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인해
더 연약한 그릇이지만,
그 연약함이
오히려 아름다움이 되는 그릇—
그것이 질그릇이다.
깨지기 쉽고,
더럽혀지기 쉬운 까닭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는, 그런
‘은혜의 질그릇’이고 싶다.
내 안에 담긴 것이
내 삶을 통해 흘러나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기쁨 중 기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