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맹신하진 않지만요

이번 대운에 '겁재'가 있다고요?

by 소정

지인이 사주 명리를 공부한다며, 내 사주를 봐주었다. 귀가 얇은 바람에 일부러 유사과학을 멀리하는 나라서 내 발로 보러 가는 일은 잘 없는데, 첫 취업을 앞두고 속이 답답해 친구 따라 봤던 신점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잠시 기다리자, 첫마디가 따라왔다. "목표가 너무 많으면 과부하가 올 수 있으니 조심해." 처음부터 뜨끔했다. 지인은 내가 번아웃이 와서 이른바 그로기 상태로 재정비 중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인은 이어서 말했다. "남들이 보기엔 밝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눈에 띄지만, 속엔 생각 많은 심해 같은 내면이 있네.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는 모습이 다르겠다." 나는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심해를 알아채다니. 사주라는 거 제법 신통하잖아. 이외에도 변덕이 많고, 대쪽 같은 구석이 있는 등 보인 적도 티 낸 적도 없는 내밀한 성격까지 맞추자 처음에 든 의심일랑 먼지만큼 작아지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기 시작하는 내가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좀 힘든 일이 많았어? 그때부터 대운이 바뀌었는데 '겁재'가 끼어 있어서." 지인이 말한 그 해는 내가 직장을 구해 서울로 올라온 해였다. 과연 지인의 말처럼 힘들고 예상치 못한 일이 우수수 쏟아졌고, 이전의 순진하고 서툰 내가 이리저리 깎여나가는 해였다. 새로운 만남도, 끝을 마주한 인연도 많았다. 그는 겁재가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걸 잘 풀어내고 이번 대운을 무사히 지나가려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좋다고도 일러줬다.


나는 여전히 겁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지인 역시 조심스레 내 명리를 읽으며 해결법을 중심으로 말해주었지만, 겁재란 말하자면 나와 줄다리기를 하는 방해꾼의 느낌인 것 같다. 그래서 겁재가 강하면 재물 또는 인간관계를 얻기가 쉽지 않고, 자꾸만 불화가 생길 수 있다. 꼭 나쁜 건 아니다. 겁재는 그야말로 '경쟁자'의 역할이라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승부욕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단다.


본인 사주에 겁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우 이번 대운에 겁재가 있다고 했다. 대운에 겁재가 있는 경우, 그야말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울고 웃는 10년을 보내게 된다. 경쟁적인 겁재의 특성상, 부딪히기보다 수용하고 이해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게 이 대운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했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좋은 환경에 노출될 수 있도록 내 노력도 필요하다면서.


내가 언젠가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올해 가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요가를 시작했다고 하니 지인이 말 그대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내 사주에 너무 잘 맞는다고, 사주란 게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정답지라기보다 확률이 높은 고난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한 공부라고 한다면, 나는 사주를 모르고도 아는 사람처럼 좋은 선택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잔뜩 칭찬을 받았다.


그러면서 이번 대운이 지나가기 전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꼭 책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 겁재를 잘 지나오려면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꼭 직접적인 대면이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책이나 영상처럼 창작물을 통해 마주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그러니 무엇이 되었든 나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가볍게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다며 나를 다독였다. 힘을 좀 빼고 기한에만 맞춘다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믿으라고 했다.


나는 지인에게 말했다. "올해가 유독 힘들었어. 정말 네 말대로 내 모든 인간관계가 난관이었거든. 직장, 친구, 가족까지. 특히 가족이 힘들었지. 내 내적인 문제의 8할은 엄마로부터 왔거든. 그런데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어. 나를 사랑하고 보니까, 나랑 너무 닮은 엄마까지 사랑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알게 됐어. 엄마도 자기를 사랑하지 못해서, 엄마랑 너무 닮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그렇게 상처를 물려주는 모녀가 많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싶은 책이 있어. 그걸 위해 지금 글을 쓰는 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또다시 눈을 반짝였다. 약간 눈물이 고인 것도 같았다. 그는 감격해서 말했다. "겁재는 거울과도 같은 거라서, 그걸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근본적인 해결책인데, 너는 그걸 해냈구나.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그런 얘기가 있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사주팔자가 의미를 잃는다고. 너는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경지에 다다른 네가 멋지다."


나는 여전히 사주를 맹신하지 않고, 종교도 없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삶의 진리란 유일하다는 것. 그 진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방법을 서술하는 언어가 다양할 뿐이라고. 그 언어는 종교일 수도, 사주나 타로 같은 형태일 수도 있고, 소설이나 영화처럼 문화예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한 그 창작물은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래서 깊게 고민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만나면 언어가 달라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을지라도.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다만 스스로 그걸 깨닫기가 쉽지 않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헤맨다. 그러다 보면 어떤 언어로 되어있든, 우연히 만난 한 문장이 벽인 줄 알았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타인의 창작물을 보고 읽어야 한다. 귀중한 우연을 만날 기회를 늘리기 위해, 세상을 헤엄치면서, 무언가를 자꾸 깨달으려고. 내 안 깊숙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아주 먼 곳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삶이란 여행과 닮아있다. 모든 여정은 아주 가까운 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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