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돌볼 권리가 있다.

베니스에 가서야 얻게 된 깨달음

by 문연이

"저는 오늘 저랑 밥 먹을게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 시간은 정신없이 보낸 오전과 더 정신없이 보낸 오후 사이에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이다.


벌써 4년 전이다. 2014년 여름, 나는 친구 M과 J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함께 여행하고 잘츠부르크에서 친구들은 스위스로 나는 이태리 베니스로 각자의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가끔은 서운했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마침내 헤어져야 할 날이 찾아왔다. 나는 베니스행 야간열차를 타야 했으므로 다음날 오전까지 잘츠부르크에 머무르는 친구들이 역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막연히 설렐 것으로 생각했던 혼자 여행이 서글퍼지기 시작한 것은. 친구들과 함께 다녔을 땐 원래 내려야 할 도착 역에 제때 내리지 못해 들어본 적도 없던 역에 내려 멍하니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을 때조차 어드벤처 만화 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마냥 신나 했는데, 그 일이 혼자 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호러영화로 장르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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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상념에 당장이라도 기차표를 취소하고 친구들을 따라가고픈 마음을 뒤로한 채 꽃무늬 캐리어에 멜랑꼴리 한 기분까지 담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좁은 2층 침대 좌석을 배정받은 나는 그 위를 낑낑거리며 올라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혹시나 내가 잠들었을 때 악명 높은 소매치기가 캐리어를 훔쳐가기라도 할까 봐 기다란 자물쇠 끝으로 캐리어와 내 발목을 동여맨 채 잔 것도, 안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멍하니 누워있었다. 열차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무심히 내달렸고, 어느새 동이 터오르기 시작하며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바다가 드러났다. 베니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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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까진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도시가 물에 가라앉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관광객이 도처에 빽빽했다. 햇빛은 드럽게 강해서 선글라스 없이는 45도로 고개를 드는 것조차 어려웠다. 캐리어는 드럽게 무거웠고, 수상택시 표를 사는 줄은 드럽게 길었다. 정신은 이미 불면과 불안으로 가득 차 제 일을 해낼 줄 아는 신체기관은 발뿐이었다. 부지런한 두 발의 도움을 받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풀었고 침대에 누워 와이파이를 연결한 뒤 엄마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엄마" 하고 내뱉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지구 반대편에서 전화를 건 딸이 덜컥 울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 "와 와 무슨 일이고." 하며 다급히 묻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애들이랑 이제 헤어지고 혼자 여행 시작했는데 벌써 힘들고 무섭다'며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엄마는 평소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대인배였으므로 역시나 "놀래라 가씨나야." 하며 안도했다.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니 울음 반 말소리 반을 내뱉으며 꺽꺽거리던 나도 괜히 민망해 안정을 되찾았다. 뒤이어 엄마는 "괜찮다. 그런 경험도 해봐야지. 이제 시작인데 밥 먹고 놀다 보면 금방 괜찮아 질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무서우면은 그냥 와삐라." 하고 다독여주었다.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다시 결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와삐라 라는 말은 쫌만 더 버티삐라 로 바뀌었을 테지만 엄마 말처럼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아직 보고 듣고 맛볼 것이 많이 남았으므로 다시 씩씩하게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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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보았던 동유럽 도시들과 달리 베니스는 참 컬러풀했다. 노랫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경쾌했고, 수많은 관광객들도 도시 전체가 끓는 물처럼 붐벼 흥겨워보였다. 문제는 내 흥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 가족과 연인과 웃으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친구 있거든' 하며 괜히 속으로 시비를 걸어댔고 전엔 느껴보지 못한 외로움에 사무쳐 즐겁지 않았다.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셀카봉을 꺼내 사진도 찍어보고 영상도 찍어보았지만 그때만 해도 셀카봉은 한국인만의 인싸템이었기에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모두 나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봤다. 그 시선들이 나를 찌르는 송곳처럼 느껴져 도피처를 찾기 시작했고, 그때 산마르코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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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당 외관이 수정 중이라 전체 샷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door__op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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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을 들어가자마자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성당 특유의 향은 죽은 피처럼 굳어있던 머리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곳곳에 자몽처럼 켜져 있던 주황객의 불빛들이 마음 곳곳에 얼어있던 서리 같은 것들을 녹여주었다. 그곳은 마치 차가운 눈길을 걷다 발견한 따뜻한 오두막 같은 곳이었다. 성당 앞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 왼쪽 구석의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예수상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손깍지를 끼우고 기도를 시작했다. 종교도 없고 기도를 해본 적도 없었으니 그건 야매 기도였지만 상관없었다. 신은 타박하지 않을 테니.


두 손을 맞잡고 나는 왜 이렇게 외로운 것인지, 친구들과 함께 다닐 때도 이 순간을 꿈꿔왔는데 왜 현실은 이모양인지 되묻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가 나를 잘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진 것은.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하려고 목소리를 내왔지만 내가 그 목소리를 계속 외면해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이 조용한 곳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니 그제야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의 기분,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해왔었다. 내 기분, 내 마음은 늘 그 의식에 가려져 마음 구석진 곳에서 내가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구석진 곳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잠시 가려진 그늘인 줄로만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곰팡이는 더 넓게 퍼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공황장애라는 이름으로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해버렸다. 드디어 이해가 갔다. 내가 이 병을 얻었던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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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를 더 소중히 여겼던, 억지로 꾸며내느라 바빴던 날들이 스쳐갔다. 나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마주 잡은 손을 더욱 꽉 쥐고 내내 눈물을 흘렸다. 신이 아닌 내게 보내는 참회의, 용서의 눈물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울고 나자 나의 세계가 바뀌어있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막연한 슬픔과 외로움의 장막은 걷히고 없었다.


진짜 나를 바라보게 되자 외로움을 느끼게 된 순간까지도 감사했다. 외로움, 그러니까 누군가 곁에 없다는 결핍의 감정을 느낀다는 건 그동안 누군가가 늘 곁에 있는 풍요 속에 살았단 뜻이니까. 결핍을 느껴야만 충만했던 때의 풍요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참 가소로운 존재였지만 24년 만에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준 모든 이들이 고마웠다.


이 날의 신비로운 경험 덕분에 나는 비로소 나를 돌볼 줄 알게 되었다. 복잡한 시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지금 내 기분과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알맞은 때가 되면 나는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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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슬픔이다. 보라. 참는 사람은 늘 참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메뉴판에서 한 끼의 식사를 고르듯 적당한 미소와 웃음을 골라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것들을 코르크 삼아 울음이 치솟는 성대를 틀어막는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81


이제 나는 내 슬픔을 잃어버린 슬픔을 더 이상 느끼지 않기 위해 나와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산책을 한다. 울적할 땐 좋아하는 책을 보고 필사를 하기도 하고, 멍하니 침대 위에 드러누워 생각 지우기 놀이를 한다. 머리가 지끈거릴 땐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며 명상을 하고, 여전히 스트레스가 몸 안에 쌓여 있는 느낌이면 운동을 한다. 나의 안녕을 묻고 답하는 시간 덕분에 내가 무엇을 할 때 편안해지는지, 어떻게 해야 힘든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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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동안 남에게는 괜찮냐 안부도 묻고 잘 자란 굿나잇 인사를 수도 없이 했지만 정작 제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오늘 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너 정말 괜찮으냐' 안부를 물어주고 따뜻한 굿나잇 인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도 굿나잇. 장재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중



나와 가장 오래 함께 할 사람은 결국 나니까 나는 오늘도 나를 돌볼 권리에 최선을 다한다. 그럼 오늘 밤도 굿나잇.






이번 주 거기서부터 쓰기 모임의 주제는 영수증이었다. 한 주 동안 쓴 영수증을 보고 얽힌 이야기를 쓰는 것. 나의 영수증은 나를 돌보는 점심시간에 사용힌, 2018년 11월 22일 스타벅스커피코리아에서 쓴 11,200원의 돌체라떼와 루꼴라 샌드위치 구매 내역이 담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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