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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랑 Oct 05. 2023

피아노가 싫어서 계단을 핥기

8살짜리 아이의 발상은 원래 이상하지 않겠어요?

쇠로 된 계단은 차갑고 비릿했습니다. 저는 역겨움을 반기며 먼지와 녹으로 범벅이 된 계단을 핥았습니다. 8살이 선택한 도망의 방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좋아하셨습니다. 배우는 건 어려워하셨지만요.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를 키우기로 하셨습니다. 마침 그때는 집안 형편도 나쁘지 않았지요. IMF 전이었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피아노 학원으로 보냅니다. 초등학교 2학년, 8살 때의 일입니다.


저는 빠른 년생이어서 또래보다 손이 작았어요. 아니, 지금도 손이 작은 걸 보니 태생적인 문제 같네요. 그래서인지 피아노를 칠 때면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더군다나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 동시에 건반을 누르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한 옥타브를 칠 수 있어야 가능한 연주도 있는데 말이죠.


피아노 학원의 선생님은 저를 안쓰러워했습니다. 농담으로 손가락 사이를 가위로 잘라서 손을 길게 만들자고 했습니다. 정작 저는 선생님의 농담에 피아노를 더 싫어하게 되었지만요.

학생의 상태와는 별개로 학원에는 커리큘럼이 있습니다. 바이엘과 하농은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아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잘 되지 않더라도 계속 쳐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피아노 건반 자체가 고통인 제게는 고역이었습니다. 당연히 피아노 실력이 늘지 않았죠.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서 발표회를 할 때 저 혼자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때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이 아이에게 맞지 않다는 걸 아셨나 봅니다. 저는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과외 선생님은 예쁜 대학생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두 명의 아이를 지도했어요. 한 명은 교과 과정을 배우는 5학년 언니였고, 다른 한 명은 피아노를 배우는 저였습니다.


선생님은 피아노가 있는 방에 저와 언니를 두고 연습시간과 문제풀이 시간을 동시에 주었습니다. 언니가 문제를 푸는 동안, 저는 피아노 곡을 여러 번 치면서 노트에 그려진 연습 확인용 동그라미를 색칠해야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피아노가 무섭고 싫었습니다. 하지만 문밖의 선생님은 피아노 소리로 제가 연습하는지 다 아시겠지요. 그러던 중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냅니다. 이미 피아노 악보를 읽고 칠 줄 아는 5학년 언니에게 대신 연습 연주를 부탁하는 거였어요. 그동안 저는 언니의 문제집을 풀고요. 언니의 문제집은 문제 속에 답이 있는 과목이라 풀 수 있었습니다. 피아노는 좋아하지만 문제집은 싫었던 언니는 수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공모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린아이의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연습시간이 끝난 후 방으로 들어온 선생님은 능숙해진 피아노 소리로 상황을 파악하셨더라고요. 우리 둘 다 많이 혼났고, 그 후로 언니는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제가 연습하는 내내 곁에 있었습니다.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다정하게. 저를 어르고 달래 가며 연습을 시키셨지요. 




저는 피아노 선생님 댁 앞의 계단에 주저앉아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피아노라는 끔찍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머니께 혼이 나겠죠. 저는 어머니에게 맞는 것이 무서웠어요. 그러니 수업 땡땡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실에서 도망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도망은 병에 걸리는 거였어요. 


먼저 위생상태를 망가트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앉아있던 계단을 핥았습니다. 쇠로 만든 계단은 몹시 차가웠고, 쌓여있던 먼지와 녹가루가 혀에 도골도골 뭉쳤습니다. 쇠에서 피와 똑같은 맛이 나는 것이 신기하고 역겨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겨움이 반가웠어요. 틀림없이 병에 걸릴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에 걸리지는 않았어요. 어린아이의 회복력은 굉장했던 걸까요? 매일매일 계단을 핥아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놀이터의 흙도 씹어보았습니다. 차마 삼키지는 못했지만요. 아마 삼키지 못해서 병에 걸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저는 피아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어쩌다가 피아노를 그만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첫 번째 도망이 비굴하게 실패한 기억만 남았네요.




만약 제가 도망치지 않는 아이였다면 어땠을까요?


주저앉아 있던 피아노 선생님 댁 계단을 핥는 대신 당당하게 제 입장을 표현해 볼 거예요.


먼저 선생님께 제 상태를 설명드릴 거예요. 선생님도 어머니에게 돈을 받은 상황인걸요. 아이가 싫어해도 억지로 지도해야 하는 힘든 상황 속에 계셨겠죠. 나름대로 애쓰셨던 선생님께 제 입장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사과드리는 게 예의겠지요.


"저는 피아노를 치는 것이 손에 무리도 가고, 흥미도 생기지 않아요. 죄송해요."


다음으로는 할아버지를 포섭할 것입니다. 저는 3대가 같이 살았거든요. 집의 가장 어른인 할아버지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도움을 요청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저를 예뻐하셨기에 제 편을 들어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제 방이 아니라 할아버지 방에서 지낼 거예요. 제 방에 있으면 언제 어머니와 작은 방에 들어갈지 모르니까요. 작은 방에 들어가면 저를 내려치는 구둣주걱에 울면서 잘못을 빌어야 하거든요.


할아버지는 항상 저를 감싸주셨지만 어머니가 저를 작은 방에 데리고 가실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어떻게든 할아버지 방에서 버텨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책상 밑이나 이불장에 숨어있으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리고 피아노 대신에 제가 배우고 싶은 걸 어머니께 말씀드려도 좋았을 거예요. 대안을 제시하며 의견을 말씀드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니까요. 딱히 배우고 싶은 건 없었지만 피아노보다는 훨씬 나았겠지요.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시니 제가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받아주셨을지도 몰라요.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저는 좋아하지 않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 선생님께 사과를 드리고,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한 후, 자애로운 어머니 덕에 피아노가 아닌 더 좋은 것에 제 유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언제나 현실을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제 명확한 의사를 전달했거든요.



저는 똑 부러지고 멋진 아이였다고 기억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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