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후회의 힘
회피형 인간에서 벗어나는 과거 날조 프로젝트
저는 평생을 도망쳤습니다.
최근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저도 제 자신을 나름대로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회피형 인간이었습니다. 많은 문제 상황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모르는 척 도망쳤지요.
그런데 평생 동안 제가 도망친 대상들은 조금 시시합니다. 세상에는 대단한 역경을 겪은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고작 시시한 것에 도망쳤습니다. 이런 제 도망은 치졸하고 어리석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약해빠진 자신을 책망하며, 겉으로는 평안한 척하면서 홀로 도망쳤습니다. 외롭고 안전한 도망의 길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과거의 수많은 도망이 우르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의 소인배 같은 저로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했습니다. 하지만 마냥 합리화하기에는 제 도망들이 너무나 후회되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후회의 비참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저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제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 비겁하게 도망치는 제 기억을 조작하는 거죠. 치사하지만, 뭐 어떤가요? 저 혼자만의 날조를 글로 적는 것이 꼴불견일 수 있지만 불법은 아니니까요.
저는 후회되는 도망의 순간들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도망 대신에, 지금의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적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새로운 것이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지금의 저는 도망치던 때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도망 이후로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며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었죠.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망으로 패배한 순간만 강하게 기억했고, 제가 도망만 치는 사람이라고 제 자신을 오해했던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한 후회는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저는 후회의 힘으로 후회의 상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차올랐습니다.
저는 세상을 마주 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딛고 회복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타인의 마음도 치유합니다. 그래서 상처가 많은 요즘 같은 시대의 미디어에서는 상담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즐겨보는 상담 프로그램이 한두 개쯤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흐름에 제 삶도 한 사례로 던져봅니다. 분명 누군가는 저와 같은 도망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그 누군가가 과거를 다시 세우는 제 삶을 보고, 위로와 응원을 받길 바랍니다. 저는 그 소망을 가지고 비겁하고 초라했던 제 삶을 공유합니다.
제 도망은 항상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도망을 다시 매만지는 일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제 삶은 위로의 참고자료가 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디 제 도망사(史)의 날조를 함께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