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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랑 Oct 05. 2023

갓난 동생을 해치려 한 혐의

다들 제가 동생을 미워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부모님은 제가 솔직한 아이가 되길 원했습니다. 동생을 미워해서 해치려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길 바라셨어요. 결국 저는 동생을 좋아한다는 진실에서 도망쳤습니다.




7살 때 동생이 생겼습니다. 어른들이 기다리시던 아들이었습니다. 저도 동생이 반가웠어요. 아파트 놀이터에 동생을 데리고 오는 아이들이 정말 부러웠거든요. 그런데 동생이 생기다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요.


하지만 집에 도착한 시뻘건 아기는 함께 놀 수 있는 동생은 아니었어요. 키워야 하는 존재였죠. 그럼에도 동생이 좋았습니다. 아기란 존재가 신기했어요. 매일매일 달라지는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는 이런 상태였구나 상상하기도 했고요. 기저귀 가는 법도 배웠습니다. 여러 가지 분유를 섞는 법도 배웠고요.

어른들이 예전만큼 저를 보살펴주지 않아서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저는 동생에 비하면 한참 누나였는 걸요. 저는 학교도 다니고, 한글도 잘 쓰고, 준비물도 스스로 살 줄 알았어요. 마을버스도 혼자 탈 수 있었고요. 그에 비하면 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꼬물락 거리는 동생을 보면 잘 키워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어렸고, 동생을 돌보는 데에 서툴러서 혼이 많이 났지요.




동생 문제로 크게 혼난 첫 기억은 그 애를 떨어트렸을 때였습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있을 때였어요. 누군가 동생을 업어주었고, 그걸 따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업어보고 싶다고 했어요. 어머니께서 제 등에 동생을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양팔을 뒤로 돌려 동생의 엉덩이를 받쳤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흉내를 내며 살살 몸을 흔들었습니다. 이때까지는 어른들이 흐뭇하게 저를 보셨지요.


그때였습니다. 동생이 몸을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 등이 불편했던 걸까요? 아무튼 동생은 갑자기 몸을 흔들었고 엉덩이만 받치고 있던 제 손을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머리부터 떨어졌어요. 그 애의 울음소리에 저도 엉덩방아를 찢었습니다. 어른들은 동생에게로 달려갔어요. 아이가 다쳤는지 살피고 토닥이며 달래주셨지요.


저는 계속 바들바들 떨면서 앉아있습니다. 눈물이 뚝뚝 났습니다. 저 때문에 동생이 아플까 봐 걱정되었어요. 다행히 동생은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다시 울어야 했지요. 어머니에게 이끌려 작은 방으로 들어갔거든요. 작은 방에 대한 설명은 더 하고 싶지 않네요.


한참 후 거실로 나오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작은 방에서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가 동생을 미워해서 일부러 그 애를 떨어트렸다는 거였어요. 저는 아니라고 했고, 다시 작은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몸이 더욱 얼룩덜룩해졌습니다. 


이후로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고, 매번 동생을 미워한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순간도 그 애가 미운 적이 없었어요. 제 동생인걸요.




가장 크게 혼난 기억은 이때네요. 다른 지방에 사시는 큰 고모 댁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기에게는 도시락인 분유통이 있었어요. 그 분유통은 투명한 통이 칸칸이 겹쳐지는 구조였습니다. 분유와 이유식을 나름대로 조합해서 한 칸마다 1회분 씩 담았지요.


어른들은 동생을 재우다 같이 잠드셨습니다. 원래 어른들이란 낮잠을 좋아하니까요. 그 집에 깨어있는 사람은 저와 사촌 언니뿐이었습니다. 사촌언니가 어른들이 깨지 않게 조용조용 속삭였어요.


“우리 엄마가 시켜서 이거부터 해야 돼. 기다려봐. 다 하고 토끼 인형 보여줄게.”


아마도 큰 고모께서 언니에게 분유통을 채우라고 얘기하셨나 봅니다. 손이 커다란 사촌언니는 벌써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언니가 미색의 가루를 한 칸, 한 칸 채우는 모습이 좋아서 언니 옆에 착 붙어 있었어요. 언니는 손이 작은 저보다 훨씬 능숙하게 하더라고요. 언니 덕분에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동생이 배고파도 문제없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배고파하면 한 칸씩 분유통에 덜어진 분유를 따뜻한 물에 타서 젖병에 물려주면 되거든요.


분유통을 가방에 담고 언니는 토끼 인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손바닥에 올라가는 토끼 인형은 작고 단단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푹신하고 큰 인형이 좋았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언니의 토끼는 실바니안 패밀리였어요. 하긴, 큰 고모댁은 꽤나 잘살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건이 일어납니다. 동생이 울었고, 어머니는 분유통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분유통의 닫힘이 헐겁게 되었는지 가방 안에 분유 가루가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동생은 배가 고파 계속 울었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당황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커다란 언니도 실수를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동생은 잠들더군요. 오랜 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한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든 동생을 눕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손을 잡고 작은 방으로 가셨어요.


작은 방에 들어가고 점점 몸에 불규칙한 줄무늬가 생겼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솔직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솔직함의 증거로 동생을 괴롭히기 위해 분유통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자백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솔직한 아이가 되는 것과 요구받은 자백은 모순적이었습니다.


저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의자를 던질 수 있을 만큼 힘이 무척 세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진실로부터 도망을 선택했습니다. 의자에 두 번 맞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망은 실패했습니다. 거짓 자백으로 역으로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을 낳더군요. 죄목이 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방을 좀체 열지 않으시던 할아버지께서 저를 데리러 오신 거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게 진실을 요구하지 않으셨어요. 그저 제 얼굴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날 밤은 할아버지 베개 옆에 작은 베개가 놓였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품에서 잠들면서 다짐했습니다. 솔직함에서 도망가자고요. 몸이 더 커져서 작은 방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진실의 배교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의 다짐이 남아있는지 아직까지도 저는 종종 진실에서 도망칩니다. 




만약 제가 그때 진실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면 도망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부모님께 아무리 혼나도 저는 병원에 실려간 적은 없었는걸요. 부모님은 선을 넘으시지 않을 테니 버틸만했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구하러 오실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다음 날 큰 고모댁에 전화를 할 거예요. 이 전화는 유선으로 연결된 다른 방의 전화기를 통해 부모님이 함께 듣고 있어야 합니다. 사촌언니에게 그때 분유통을 담아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면 언니는 뭐든 답변을 하겠지요. 그렇게 분유통을 잘못 담은 사람은 언니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하는 거죠.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어느 날은 부모님께서는 저를 오해하여 화를 많이 내셨지만, 결국 사촌 언니와의 통화로 진실을 아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사과를 하셨고 동생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제 진심을 믿어주셨어요.



이렇게 기억할래요. 저는 동생을 좋아하는 솔직한 아이였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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