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아홉 번째 주제
내가 좋아했던 손이 예쁘던 사람.
따스한 것들만 내어주고 싶었다.
내가 촌스럽게 간섭했던
네 시간들이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생채기가 났던 것은 아닐까.
추운 날 손톱이 푸르게 물들 때까지
집 앞 가로등을 지켜주던 사람.
이맘때 즈음
정갈하게 놓인 장갑들을 보면
그때의 네 손이 생각나서
머쓱하게 웃는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려서,
가장 사랑했던 때였을지도 모를
우리의 시간이 그리워서.
이제야 꺼내어 말하면,
너의 순간을 아주 많이 애정하고 있었다.
야박한 세월에 흘리듯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그랬었다구.
-Ram
1.
난생처음으로 귀여운 털장갑이 생겼다. 마치 딱 봐도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회색 배경에 흰색과 빨간색 눈꽃인지 나무인지 모를 그림이 마구마구 그려져있는 장갑이다. 사실 가죽장갑과 기모장갑이 있긴 하지만, 털장갑을 산 이유는 따로 있다. 초 겨울,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는데 장갑이 아쉬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는 산에 오를 때 거의 단거리로 올라갔기에 경사가 가파랐다. 그래서 두 손, 두 발 다 써서 산을 올랐다. 그때 괜히 장갑이 아쉽고 그랬다. 그래서 지나가다 고민 끝에(사실 두 번 고민했다.-한 번은 고민하다 그냥 사지 않음) 장갑을 샀다. 산에 같이 올라가고 싶은 사람과 사이좋게 하나씩 마음에 드는 색의 장갑을 골랐다. 그 뒤로 한파가 찾아와서 등산을 가지 못했다. 이제 1월도 슬금슬금 지나가고 있으니, 조금 날이 풀리면 이 장갑을 끼고 다시 등산을 가고 싶다.
2.
사실 올 겨울을 나면서 장갑이 딱히 필요없었다. 내 손은 장갑을 낀 것보다 더 따뜻했다.
3.
설거지를 할 때 고무장갑을 사용하지 않으면, 괜히 나의 건조한 손이(내 손은 평소에 건조해서 손을 씻은 후에 꼭 핸드크림을 바른다) 주방세제의 그 거품이 가득한 비눗물을 다 흡수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무장갑은 두꺼워서 어떤 것이든 거리낌없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화장실을 청소할때도 고무장갑은 굉장히 유용하다. 고무장갑은 살면서 집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이사가면 고무장갑 하나 더 사야지!
4.
궁금한 게 있는데,
손이 원래 따뜻한 사람은 겨울에 손이 시려울까?
나는 사실 손이 별로 따뜻하지 않아서 겨울에 찬바람이 불면 손이 더 시려운데,
손이 원래 따뜻한 사람은 겨울에 손이 얼만큼 시려울까?
마치 선선한 곳에 있다가 차가운 곳에 나가는 것보다 따뜻한데 있다가 차가운 데로 나가면 더 많이 춥게 느껴지는 것처럼, 손이 따뜻하면 손이 차가운 사람보다 찬바람이 더 차게 느껴질까?
아니면 그 따뜻한 온기가 장갑처럼 보온역할을 해주어서 정말 손이 덜 시려울까?
그냥 찬바람이 불면 손은 다 똑같이 시려울까?
궁금하다.
5.
작년 커플 목도리에 이어 동생이 커플 장갑을 내 생일선물로 주었다.
작년에 받은 커플 목도리는 (나는 하늘색, 동생은 분홍색) 올해도 종종 사용하는데,
장갑은..... 모르고 빠뜨린척 하면서 집에서 안가지고 왔다.
왜냐면 장갑에 잔뜩 붙어있는 털 장식이 너무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그 털들이 내 코트, 니트, 치마 등에 잔뜩 묻어 돌돌이로 항상 떼어 낼 것만 같은 예감에....
사실 모르고 빠뜨린 척 한것이지 일부러 집에 두고왔다. 동생아 미안해. 어쩔수없었어..
-Hee
현대식 건축 디자인에 고풍스러운 한옥 양식으로 절묘하게 특징을 살린 건물이 보인다. 1층에는 전시장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디자인 서적들을 둘러볼 수 있는 도서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찾아보고 이용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아는 사람만 방문하는 그런 곳. 투명한 유리와 새하얀 벽 그리고 은은한 나무재질로 특징을 살린 공간이 아늑하다.
가지런히 정리된 디자인 서적들은 나에게 의욕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본을 구하기 힘든 귀한 서적들도 진열되어 있다. 꼭 하얀 장갑을 끼고 봐야한다는 안내와 함께 새하얀 장갑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건물 내부의 공기는 작은 소란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르고 정적이고 미묘하다.
손끝을 서적과 선반에 사뿐히 걸치고는 한걸음 한걸음 서적들을 둘러본다. 꿈꾸게 되는 곳. 꿈 꿀 수 있는 곳. 이러한 공간이 기획되었고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감을 얻는 곳. 북촌은 다시생각해봐도 어려서부터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깊은 곳이다.
하얀 장갑을 끼고는 고풍스러운 서적을 펼쳐본다. 여전히 꿈꾸고 있다. 10년 전에도 그러하였지. 살짝 웃음이 나온다. 다행이다 싶다. 되도록 오래도록 꿈꾸는 삶을 살자 다짐한다.
-Cheol
이대로 우리 죽어버리자 널 두고 변하기는 싫어. 그 즈음 조휴일의 가사는 이제 시큰거리지 않는다. 그 가사를 서로에게 말하며 영원할 것처럼 사랑을 낭비하던 연인도 언젠가 헤어졌다. 나는 상관도 없는 그들의 이별이 괜히 서글펐지만 사랑이라니, 영원이라니, 정말로 그런 걸 믿지는 않았지?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잃기 쉬운 것들이 처음부터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은 것들은 아니었다. 볼펜, 우산, 지갑… 나같이 손에 든 걸 곧잘 흘리는 사람은 그래서 비싼 장갑, 목도리를 사지 않는다. 언젠가 잃어버려 마음 아파할 바에는 잃어버려도 아쉽지 않은 것들로만 곁을 채우는 것이다. 사랑도 한때는 그런 싸구려들 가운데 하나였다. 추운 겨울날 한 짝씩 나눠 낀 장갑이 어느새 사라져 없듯 볼품없는 사랑도 곧잘 잃어버리곤 했다.
-Ho
2018년 1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