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예순 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이렇게 단어만으로도

숨막히는 말이 또 있을까.


이것은 순전히 어른의 영역.


그렇게 생각하던 삶은

뜻하지 않은 때에

알량한 주머니로

준비없이 부딪히게 된다.


살아가는 의,식,주 중에

입고 먹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혼자해낼 수 있었는데,

주거 공간은 달랐다.


부모님 밑에서 자랄 때가 아니라

독립의 단어를 붙이는 것은

완전한 '주'의 독립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독립해서

여기저기 잘도 옮겨다녔다.


부모님은 바빴고,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법률해석과 정책을 훑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월세, 전세 옮기면서

내집마련은 발끝에 닿지도 않았지만

공간을 넓히고 채우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내년의 나는 사실

부동산으로 또 골치아파질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기도하고 알아보는 방법 뿐이다.


이것은 정말

어른의 영역이다.



-Ram


1.

장기하가 밀양강 주변을 러닝 하는 모습을 보니 사방이 탁 트이고 산의 푸르름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곳임이 확 느껴져서 언젠가 나도 저 길을 뛰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지금까지 내게 밀양이란 곳은 한 톨의 인연도 없던 곳이었는데 장기하의 러닝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구글맵을 켜서 밀양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저 러닝 코스는 실제로 어디인지 찾아보았고, 해외여행 가기 전 구글맵을 켜면 늘 하던 대로 러닝 코스 주변에 어떤 카페들이 있는지,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또 다른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 있는지 뭔가에 홀린 듯 열심히 핀을 꽂았다. 그렇게 밀양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면서 밀양에서 한 번은 살아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신기했다. 늘 경기나 서울지역에서만 살았고, 딱히 그 외에 지역엔 연고가 없었기에 단 한 번도 전라도나 경상도, 혹은 강원도 등 수도권과는 먼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전혀 없었는데 밀양에 살아보고 싶다니. 밀양처럼 내가 모르는 미지의 지역들이 얼마나 많을까. 갑자기 미래가 조금 더 재밌어졌다.


2.

대성, 대환, 민희 등등. 좋은 기운이 들어올 수 있게 기본적으로 이름을 다르게 바꾸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가명들이 존재했던 곳.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빛이 닿으면 뻔쩍뻔쩍한 옷감으로 만든 정장에 손목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커프스. 그리고 셔츠 안으로 힐끗 보이던 알이 큰 시계. 어떤 이들은 상사의 브리핑을 녹음한 다음 그대로 조잘조잘 앵무새처럼 외웠고, 어떤 이들은 조금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머리에 스프레이와 왁스를 잔뜩 바르고 다녔으며, 어떤 이들은 또 다른 한패의 아줌마들에게 언제 나가고,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하라며 행동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새로 외제차를 뽑았다며 차의 성능에 대해 자랑하고 있는 데, 어떤 이들은 한 달 월급이 자신의 생각보다 적어 다음 달 월세를 고민하며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었던 그런 아이러니한 곳. 그 중심엔 부동산이 있었다.



-Hee


1.

이제 이사는 익숙해질 법한데도 완고하게 생경한 데가 있다. 계약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은 어디 한 군데쯤은 꼭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싫지만 나를 품어줬던 공간에는 그저 정만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숙련된 이사센터 직원은 손이 참 빨랐다. 남의 물건이어서 그럴까. 언제 다 치우나 싶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박스에 담겨 트럭으로 옮겨졌다. 좁게만 느껴지던 집이 참 너르게 보인다.


2.

전세 사기만 벌써 두 번째다. 먼젓번보다는 화가 좀 덜 났다. 혼자서 열을 내봤자 달라질 게 없는 데다가 그 화가 끝내는 자기 비판 유형의 분신으로 화하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아무렴 사기 당한 사람보다야 사기 친 사람이 나쁜 것은 자명한데도. 이제부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으니 우선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확실히 해나가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막막한 기분은 똑같지만서도.



-Ho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소고


2022년 12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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