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 Jul 26. 2022

원하던 대로 소요하였습니다         '마침내'.

                   - 예술가의 마을 센텐드레

 요즘 핫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송 서래는 품위있는 한국어를 사용해 형사 앞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마침내."


 서울을 떠나기 전 가이드로부터 이번 여행에서 특별히 보고 싶거나 원하는 게 있느냐는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센텐드레 하나만을 지목했다. 유럽의 수많은 성당들은 무신론자인 내게  비슷비슷하게 여겨졌고 특별한 감동이 없었다. 유명하다는 여러 공간들에도 관심이 별로 없었다.


 성자(Szent) 엔드레(Endre)의 이름을 딴 센텐드레는 꼭 가보고 싶었다. 여행사에서 보내온 인보이스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센덴드레 걷기'라고 적어 넣기까지 했다. 처음 센텐드레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고흐가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오아즈를 떠올렸고 부다페스트를 서울에 비유한다면 센텐드레는 아마 양수리 어디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든’과 카페와 국적 미상의 성城을 흉내 낸 모텔이 즐비한 수리 말고, 수려한 한강을 따라 숲이 있고 박물관과 미술관이 이어진 아늑한 마을을 떠올리면... 우리도 충분히 이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누구의 몫일까. 아름답던 양수리는 언젠가부터 기형의 공간이 되었다. 아차. 딴 데로 샜다. 괄호 안에 넣자.)

다뉴브강 지류인 센텐드레 두나를 따라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소도시  선텐드레
앙중맞은 '푀'(중심) 광장.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은 1754년 건축된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

 다뉴브 강 지류인 센텐드레 두나를 따라가 만난 그곳에는 소리와 빛이 있었다. 어디선가 종이 울리고, 주물 펌프가 놓인 삼각형으로 된 미학적인 공간, 푀 광장이 초입에서 여행객을 맞이했다.

  마차가 다녔음직한 돌로 만든 길, 오래된 우물, 세르비아 성당과 첨탑, 벽돌로 쌓은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십자가,  레스토랑에서 내다 놓은 알록달록한 야외테이블, 지하에는 와이너리를 숨겨놓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매단 우산 장식들.

  그래서 마침내 나는 영화처럼 말하자면 원하는 대로  소요하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꿈일 뿐, 현실은  초라하고 때로 냉혹하다. 얼마 못 가 나는 곧 지쳤다. 정오를 지나자 햇빛은 너무 뜨겁고, 어디에도 그늘이 없었다.

 아아 작열하는 유럽의 태양 아래 까뮈의 이방인이라도 된 듯 헉헉거리면서 더 이상 걷고싶지 않았다. 블러고베스텐스커(수태고지를 뜻하는 세르비아어)성당 부근에서 냉방장치가 잘 된 건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이게 '현실'이었고 나의 본질이었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서모시 머르치판 무제움은 머르치판(케이크)으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뮤제움(박물관)이었다. 서모시는 우리의 해태나 롯데 같은, 헝가리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오래된 제과제빵 브랜드다.

  그렇게 빵으로 만든 집에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재크와 콩나무, 피노키오, 미키마우스, 오즈의 마법사... 하나씩 동화 이름을 맞추며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헝가리 국민들이 특히 사랑했다는 시씨 왕비와 요제프 페렌츠 황제 부부의 인형이 있었(그래서인지 시씨를 왼쪽, 즉 앞에 둔 것이 특별했다) 글로벌 시대를 반영하듯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 (  뜬금없다), 반짝이 장갑과 의상을 그대로 재현한  <빌리진> 속  마이클 잭슨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한 부인이 쇼윈도우 안으로 들어가 작품을 실연해 주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헝가리의 여러 건물, 즉 공간도 제작해 선보이는 듯했다. 동물원 우리 속 호랑이를 연상하게 하는 이 비인간적인 이벤트가 나는 많이 불편했다.


  이런 작은 뮤제움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했다. 마을에 표정이 있고 골목살아있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솔뱅과는 또 다른 곳이었다. 현재도 200여 명의 예술가들이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말하지면 예술가의 마을인 셈이었다 .

  생각은 자연스럽게 서천 판교의 '시간이 머무르는 마을'로 흘러갔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 센텐드레였지만 코로나 팬데믹 탓에 지금 많이 위축된 상태라고 는데 현암리에서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다들 뿔뿔이 흩어졌으려나... 이런 오지라퍼.


  태양 탓하며 소요는 포기했으나  대신 춤추는 발레리나를 한 명 모셔왔다. 파리에서 사온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추기에는 그녀의 발이 너무 작았지만.

 이름은 숄이라 붙였다. 소울, , 숄. 대체 무슨 맥락? 내 마음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왜? 휴가니까.

이전 06화 헝가리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