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빛 강을 향해서

오렌지주스가 흐르는 강

by 심온

심온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폈어요.


자신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나나나무였지요. 하늘을 찌를 듯한 바나나나무들이 빙글빙글 춤추듯 서 있었답니다. 나무들은 마치 하늘나라로 가는 계단처럼 구름 속까지 쭉쭉 뻗어 있었어요.


달콤한 바나나 향기가 폴폴 날아다니며 심온이의 코를 간지럽혔고, 심온이는 저절로 킥킥 웃음이 나왔답니다.


그때 심온이의 머리 위로 알록달록한 나비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작은 반딧불이들은 빛나는 꼬리를 남기며 하늘을 수놓았고, 주황빛 깃털을 자랑하는 작은 새들은 오렌지주스 강 위를 훨훨 날아다녔어요.


하늘에는 마치 작은 요정들이 타고 다니는 듯한 민들레 씨앗들이 둥실둥실 떠다녔어요. 작은 우산을 쓴 것처럼 보이는 민들레 씨앗들은 오렌지주스 강의 향기를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답니다.


바나나나무 아래에는 오렌지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었어요.


황금빛 오렌지들이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있었지요.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환하게 빛났답니다. 커다란 오렌지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며, 달콤한 향기를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었어요.


심온이는 잠시 그 광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어요.


'아, 이제 알겠다! 저 많은 오렌지들이 땅에 떨어져서 비탈길을 따라 굴러가다가 강으로 흘러들어 간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달콤한 오렌지주스 강이 된 걸까?'


심온이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발견이 정답인 것처럼 뿌듯해했답니다.


그리고 이내 심온이는 숨이 멎을 듯한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눈앞의 거대한 물체를 바라보았지요. 심온이가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더 커다란 초록빛 둥근 공이 커다란 바나나 나무 아래에서 지평선 끝까지 까마득히 펼쳐져 있었어요.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수박이었답니다.


심온이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수박들 사이를 성큼성큼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미 초롱이와의 약속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지요.


너무 신나게 뛰어다니다 보니 심온이는 금세 목이 말랐어요.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요. 바로 수박을 베어 먹는 것이었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그 커다란 수박의 껍질을 뚫을 수가 없었어요.


마침 그곳에는 어떤 동물이 베어 먹은 듯한 자국이 있었어요.


심온이는 그곳에서 수박을 한 입 맛보았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맛이 입 안 가득 퍼졌어요. 그 달콤함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데, 지금까지 맛본 어떤 과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답니다.


심온이는 빛의 터널을 지나고, 강에서 헤엄을 치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에 너무나 지쳐 버렸어요.


달콤한 수박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그만 졸음이 쏟아졌답니다. 심온이는 수박 구멍 안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몸을 웅크렸어요. 달콤한 수박 향기와 부드러운 과육에 포근히 둘러싸인 채,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답니다.


심온이는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어요. 수박 속에서 너무 달콤하게 잠이 들어서일까요? 몸이 무척 개운했답니다.


문득 초롱이와의 약속이 떠올랐어요.


아까 초롱이가 분홍빛 사과주스 강으로 가자고 했던 게 생각났답니다. '어쩌면 초롱이는 벌써 그곳에 가 있을지도 몰라!' 심온이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어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여전히 초롱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심온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이상하게도 해는 여전히 하늘 한가운데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답니다. 더 신기한 것은 피곤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곳은 시간 천천히 흐르는 걸까?" 심온이는 혼잣말을 했어요.


주변을 살펴보니 오렌지주스 강은 여전히 졸졸 흐르고 있었고, 바나나나무는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용하고 고요했답니다. 마치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있는 것처럼요.


심온이는 용기를 내어 일어섰어요. "이제 초롱이를 찾으러 가봐야겠어." 하고 결심했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까요? 초롱이가 마지막으로 보였던 곳을 기억해보려 했지만, 너무 많이 돌아다닌 탓에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그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주변이 잘 보일 거야!" 심온이는 바나나나무를 올려다보았어요. 키가 크고 튼튼해 보이는 바나나나무를 골라 조심스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답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올라가면서 심온이는 초롱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요.


'강과 강 사이에는 장난꾸러기 못된 요정들이 살고 있다고 했지.'


바나나나무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심온이는 멀리서 빛나는 분홍 빛의 물줄기를 발견했어요.


"저기다! 분명 초롱이가 말했던 사과주스 강이야!"


심온이는 희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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