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애가 야망이 없다는 말에 대하여

by 푸르른도로시


애 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야망과 도전의식이 없냐는 말이었다. 집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화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나에게 꿈과 희망이란 가졌다가 빼앗기면 고통스러울 뿐인 예쁘지만 부담스러운 보석 같은 거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꿈을 가졌다가 마음을 바꿨다. 이걸 하고 싶지만 이래서 안 될 거야, 저것도 하고 싶지만 내가 나라서 안 될 거야, 실실 웃으면서 이딴 소리를 매번 지껄인 탓에 기가 질린 친구 하나가 떠나버리기도 했다.


어쩌면 ‘간헐적으로 자유롭게 일하기’를 선택한 배경에 이런 면모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떠나고 나서 침대 한켠에 몸을 말고 그 애의 얼굴에 떠올랐던 혐오스러운 표정을 끊임없이 곱씹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내 인생 최대의 야망은 딱 두 가지였다. 정상인이 되는 것과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는 것. 정상인이란 자신을 아주 조금만 미워하는 사람을 의미했고, 가장 안전한 장소란 누가 싸우거나 혹은 누군가 내게 싸움을 걸지 않는 곳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모든 소망을 이루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 따르면 소년급제 급의 행운을 거머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 1회에 7만원씩 하는 상담치료를 꼬박 꼬박 받았고 연극을 했으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타 먹었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약 3년간 꾸준히 요가 수련을 했다.


변화는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찾아왔다. 내가 덜 미워지자 귓가에 들리던 욕하는 소리와 노려보는 시선들이 서서히 그 생생함을 잃어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가스라이팅 하려고 시동 거는 인간을 알아보는 눈도 생겼다. 나는 차츰차츰 행복해졌다.





미술을 전공했으니 당연히 작가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끈질기게 연구하고 작업하여 세상에 내보이고 인정받길 원해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작품을 선보이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감정을 이미지로 토해내는 것 까지는 되는데 그걸 알리기 위해 애쓰는 일은 낯설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에게 그림이란 묵은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던 것 같다.


캔버스의 하얀 천은 억눌린 감정을 물질화 시키는 공간이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이미지를 발굴하여 현실 세계로 소환하고 나면 그 단계의 감정이 금세 해소 되어 바로 다음 이미지를 찾아 나서야 했다. 한 번 해소된 감정은 다시 그려낼 수가 없었다. 가끔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면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떳떳하지 못했다.


나는 미를 추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그리는 행위란 마음을 꺼내는 작업이었고 그 때문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종종 했다. 작가로서의 나는 캔버스 앞에서 가감 없이 솔직해져야 했고 (나를 보호하는 자로서의)나는 정도를 지켜야 했다. 두 마음 사이에서 싸우고 있노라면 순수하게 그리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가 없었다. 전공을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다양한 이유로 점차 그림에서 멀어져 갔다.


꽤 전위적인 정신을 가졌던 작가로서의 자아가 보호자 역할의 자아에게 밀린 걸까. 지금의 나로서는 답을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마음을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감당하기 괴로운 어떤 민감한 부분을 발견했고, 굳이 끄집어 내 고통 받거나 다른 이미지로 대체해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외면해 버리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나를 아주 가끔씩만 미워하게 되었고,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안전한 장소도 얻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때때로 가지 못한 길이 탐날 때도 있다. 한때 전위적인 혁명가를 동경했으나 타고난 배짱이 간장 종지만도 못하다는 걸 깨닫고 노선을 변경했다.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모습,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이란 은행나무 열매의 냄새처럼 도처에 퍼져 있었다. 나는 모험보다 안정을 택했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소설 ‘제인 에어’ 말미에서 제인은 지평선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어 했던 꿈을 버리고 눈 먼 로체스터와의 안정적 사랑을 택했다. 혹자는 그런 제인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산 상속으로 부자가 된 재능 있는 어린 여성이 왜 아버지뻘의 불구가 된 남성을 선택했느냐고 말이다. 충분히 더 잘 생기고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제인은 지평선 너머의 꿈을 버리고 부도덕한 옛 애인을 찾아가 가정을 꾸렸을까.


나는 그녀가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희망, 안정적인 사랑의 수원을 곁에 두고 퐁퐁 솟아오르는 샘의 단물을 받아먹으며 자신을 재 양육 할 공간부터 손에 넣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모험가에게도 베이스캠프는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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