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동지를 믿고 속아라 #10/10

10화. 위기의 임시정부

by 은명

10화. 위기의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동녕은 국무회의를 열고 1920년 10월 16일, 노동총판 안창호를 임시 북경특파원으로 파견했다. 안창호는 북경에서 청년들과 교류하면서 흥사단 북경 ‧ 천진 지부를 결성했다. 청년들과 더불어 활동하던 안창호는 이듬해 1월 상해로 돌아왔다. 마침 1921년 1월 18일, 김규식이 상해에 도착했다. 김규식은 환영회 직전 안창호의 사무실에 들렀다.

“오, 우사! 우리는 이렇게 상봉할 운명이었구려! 몸 상태는 어떻소? 병마와 싸우느라 고생 많았소.” 안창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김규식의 손을 잡았다.

“형님, 하하. 이렇게 면전에서 독립운동 영수를 감히 형님이라고 불러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듣기로는 형님 건강도 걱정입니다만.” 김규식이 다소 과장되게 웃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은 동지요. 마치 운명 공동체처럼 말이오. 언더우드, 경신학교, 김필순, 김순애... 참, 그동안 김순애 동지가 일을 많이 했답니다. 이태준 소식은 알고 있소?” 안창호가 다정하게 물었다.

“가족이란 근린에 있어 보고 싶을 때 만나서 서로 위로받고 위로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필순 형님 소식에는 경악하고 말았답니다. 아깝고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이태준은 아직....” 김규식이 화답했다.

안창호는 김필순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서병호가 가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필순의 가족을 돌보고 있어 안심이라오. 필순의 둘째 염이는 거의 매일 내 집을 드나들며 또래들과 지냅니다. 꿈이 배우인 모양이오. 나는 일단 중등과를 마치라고 하고 있소.”

김규식도 안창호와 김필순의 관계를 잘 알고 있던 터라 뭐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듯했다. “순애 씨도 염이가 걱정인 모양입니다. 나도 이제부터 힘을 보태야지요.”

안창호가 서두르듯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상해 정국이 파산 전야요. 내 힘이 부족하외다. 어떻게든 추슬러 가야 하는데.”

김규식이 말했다. “이승만은 참으로 대하기 어려운 인물이오. 나한테 파리 외교 실패의 책임을 추궁하더이다. 구미위원부에 대한 구설이 많을 때 나를 끌고 들어가더니 형님 거점지역으로 가서 공채를 팔라고 합디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북미 교포들은 도산 형님을 대하듯 나를 극진히 대해주었지요.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형님도 그저 북미에서 가족과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것을....”

김규식은 그간 일을 사무적으로 말하려고 했으나 그만 안창호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아차, 천천히 해도 될 이야기를...!’ 그러나 안창호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숙명이라고 해 둡시다. 실은 혜련에게 편지도 못 하고 있다오. 상해 정국이 잘 풀리면 편지해야지. 그런데 정국이 점점 더 꼬여가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말로 지방열, 야심가 이것이 내 이마에 새겨진 악평의 표지인가 보오.”

“이 일이 왜 형님 탓이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꽃을 피워 본 경험이 없는 불쌍한 식민지 백성이 아닙니까? 봉건 유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게다가 압제로 인해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안고 있는 현실에서 종양 앓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시다.” 김규식은 이승만을 지지하던 그 주변 인물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지성인은 아니야, 일종의 광기였어.’ 그러나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치유해야 하오? 정국 파산! 세 분 총장들도 대안이 없고, 이동휘 총리와 이승만계의 대동단결밖에는 대안이 없는데....” 안창호는 힘이 빠졌다.

“형님,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환영회 자리에서 ‘우리가 반성하고 화합하자!’라고 외쳐볼 생각입니다.” 김규식이 결연하게 말했다.

“오, 고맙소. 일단 현재 정국에서는 일본과 대치하고 있는 극동지역 피압박 민족문제를 근거로 한중러 3국의 통일 동맹을 구상 중이오. 이 일을 위해 몽양 동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오.” 안창호는 외교와 국제정세에 밝은 여운형과 김규식이 손을 잡으면 그것이 한 줄기 빛이 되리라 믿고 있었다.

김규식이 말했다. “국제 연대는 매우 중요합니다. 나도 몽양을 도우며 뜻을 함께할 생각입니다.”


김규식의 상해 귀환은 안창호에게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지. 큰 틀에서 국제정세를 함께 토론하고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동지. 안창호의 임시정부 선전위원장 직무 수행에 김규식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안창호는 그의 건강을 빌었다. 때를 맞춰 북미에서 군무총장 노백린도 하와이를 거쳐 상해에 도착했다. 그동안 노백린의 동기 김희선이 군무차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노백린 군무총장 환영회는 2월 18일에 열렸다. 안창호는 노백린 도착 소식을 듣고 2월 3일 그의 숙소를 방문했다. 마침 먼저 와 있던 김희선, 이탁, 나우(순응)가 동석했다.

노백린이 안창호를 반겼다. 중후한 인상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우 단단하게 들렸다. 거부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연병장에서 단련된 장교의 목소리다.’ 안창호는 그렇게 느꼈다.

“오, 도산 어서 오시오. 반갑소. 내 이제야 왔소.”

“형님이 오시니 김희선 형님이나 이탁, 나우 군이 제일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안창호는 그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이탁이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방금 희선 동지가 여러 가지 경과를 보고하고 있던 터입니다. 육군무관학교를 설치하고 장교를 1차, 2차 합해서 41명이나 배출했다고 들었소. 도산이 정말 큰일을 하셨소. 고생이 많으셨소.”

“고생도 아니고 제가 한 일도 아닙니다. 무관장교학교는 마땅히 김희선 교장의 공이지요. 백범과 도인권이 큰일을 했습니다. 상해 무관학교는 진행되어야 할 일들이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나저나 윌로스비행학교가 재정난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종림 군의 벼농사가 재해를 입다니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군요.”

안창호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노백린도 울컥하였다.

“독립운동은 워낙 험난한 것이지 않소. 김종림이나 신광희, 임준기, 이재수 군에 너무 의존한 것도 사실이오. 그들의 후원이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 해 볼 일이었소. 재원에 대한 다른 대안이 나올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약소국을 생각한다면 윌슨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노백린은 원망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안창호가 냉소적으로 답했다. “미국은 이해관계가 철저한 이를테면 냉정한 나라지요. 소약국회의를 하면서도 소약국의 처지나 목소리는 듣지 않는, 아니 도울 생각이 없는 나라지요.”

“외교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지 않소?” 노백린이 자문하듯 말했다. 모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의 전쟁은 어쩌면 공군력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기 중국만 해도 광동 등 여러 곳에 비행학교가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중국, 소련 등으로 비행학교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안창호는 김공집, 박현환, 이석을 생각했다. 안창호는 중국의 항공학교에 입학을 시키는 위탁 교육의 길을 궁리하고 있었다.

노백린이 말했다. “사람을 키워야지요. 독립전쟁 준비. 우리가 신민회 때 결의한 내용이 전쟁 준비와 무관 양성이었지 않소.”

김희선이 안창호를 힐끗 보면서 입을 열었다. “호적 등록을 시키고 납세와 징병제 법률에 복종하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요. 이는 도산이 연설할 때마다 강조해 온 개병, 개납 제도 확립입니다. 정부가 제 기능을 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안창호가 활기에 차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김희선 형님은 저와 생각이 같습니다. 이에 보태자면 지원병을 모집하여 사병에게 생업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노백린도 말을 이었다. “둔전병을 일으키자는 것인데 상해 같이 인구가 밀집된 도시도 둔전병제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평상시에는 돈을 벌고 유사시에는 출병하도록 군사훈련을 시키는 것이?”

안창호가 말했다. “농촌에서는 둔전제라고 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정확히 말해 노병제라고 할 수 있지요. 노동과 군사훈련입니다.”

노백린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우리가 타국의 땅에서 군사를 일으켜야 하니 중국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구려.”

안창호가 소신을 털어놓았다. “그렇습니다. 간도와 시베리아를 생각한다면 소련 당국과도 협력을 얻어 내야만 합니다. 한국과 중국, 시베리아가 모두 일본을 적으로 두고 있으니 항일연맹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신, 명령체계를 위해 세 나라 대표자로 구성된 군사 최고기관을 설립해야겠지요.”

“통일전선이라. 임시정부 군사 최고기관이 광복군총영이라지만 만주군 통합 문제가 있고, 이를 통합하고 통솔해야 한중소 통일전선이 구축되겠구려.” 노백린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잠자코 듣고만 있던 이탁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외교가 중요합니다.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지요. 우리가 땅을 빌리고 있는 형편이니 우선 중국 당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노백린은 이 말을 듣고 안창호를 바라보았다. “대안이 있소?”

“대안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2세대 청년들을 중국 군사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중국도 마침 민국 혁명 중이니 교섭을 잘하면 길은 열릴 것입니다.” 안창호는 여운형과 이미 이 문제에 관해 손문 선생의 협력을 구하기로 논의한 바 있었다.

노백린이 요약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면, 전쟁 대비가 시급하니 임시정부가 대동단결해서 정부 기능을 살려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방법은 첫째, 민적 등록과 납세와 병역의무를 실시한다. 둘째, 지원병 제도를 확립하여 유사시를 대비하되, 스스로 경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이나 영업 알선을 위해 교민단이 서로 돕는다. 셋째, 외교활동에 주력하여 항일전선에 있는 한국, 중국, 모스크바와 연맹을 맺어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지원이나 도움을 받아낸다. 넷째, 고급 장교 양성을 위해 중국이나 모스크바에서 위탁 군사교육을 받게 한다. 음, 더 있소?”

안창호는 만족스러웠다. ‘역시 노백린이다. 이분은 이승만 대통령과 불화가 없는 분이다. 미주 동지들도 이분을 존경하고 따른다고 했다. 이승만도 이분의 말은 귀담아듣겠지.’

안창호가 소신을 털어놓았다. “우선은 이승만 대통령이 맥을 짚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후 세부 실천사항은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원칙이 포고되고 기강이 서서 서로 소통만 되면 방법은 나옵니다.”


김희선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바꿨다. “지금 정부는 이동휘 총리 후임을 놓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오. 주요 의제가 총리 후임이오.”

노백린은 이 말을 듣더니 안창호를 보고 말했다. “도산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시오?”

안창호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제 생각으로는 이동휘 총리와 화합을 이루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화합이 어렵다면 이동녕 선생이 총리로 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총리를 하더라도 내각은 그대로 놔두고, 기구와 사무처를 정비하고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경비 절감을 하자는 뜻입니다.”

노백린이 맞장구를 쳤다. “옳거니. 그러니까 도산의 생각은 사람이나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시에 대비하는 항구적인 정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정부 축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 해 보오.”

“지탱하기 어려운 정부 기관은 축소하여 소규모 연합 사무소를 설치하고, 각부 차장을 참사원으로 하여 그중 사무장을 뽑아 국무회의의 명의 사무를 집행하게 한다. 정부 부속 기관을 정비하고, 워싱턴과 파리의 선전부를 축소하며, 개척사업 등을 추진하여 자급자족책을 마련, 정부를 유지한다. 어떻게든 정부는 유지되어야 한다.” 안창호가 말했다.

노백린은 안창호의 정부 개조안이 바람직한 대안으로 생각되었다. ‘정부 개조를 하려면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가 중요한데. 과연 이승만이 이를 추진하겠는가?’ 노백린은 안창호의 계획을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항일 통일전선에 관해서 물었다. “한중소 비밀연맹과 통일전선 구축에 대해서 더 듣고 싶소.”

이탁과 나우가 자세를 곧추세우며 안창호를 응시했다. 김희선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궁금하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창호는 노백린의 미소 띤 시선을 느끼며 막힘 없이 설명했다.

“우리 청년들은 이미 중국과 모스크바의 혁명가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한중호조사가 발족될 것이고, 상해에서 이동휘를 중심으로 공산주의자 그룹이 형성되었습니다. 중국도 조만간 공산당을 창당한답니다. 세 나라가 모두 일본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니 항일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것이지요. 여기에 일본 내 공산당 그룹도 연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약소국 인민해방이 그들의 최종 이념입니다. 일본 내에서 내란 조성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래지 않아서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니 우리는 이때를 대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탁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무력활동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광복군사령부에서는 안주, 선천, 신의주 등에 군영을 따로 설치하고 조선총독부 기관폭파, 경찰 등 앞잡이 처단에 나섰던 것입니다.”

노백린이 말했다. “무력활동이 필요하긴 한데 개인의 희생이 너무 안타깝소. 도산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신민회 때 전쟁 준비를 위해 해외 무관학교를 세우고 군사를 양성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었지. 우리 독립군 2세들은 지금 변변한 군사학교 하나 없이 남의 땅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데.... 시대가 바뀌었으니 중국 혁명당이나 모스크바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구려.”

김희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처한 상황이 참으로 어려운데 북경이나 노령에서는 임시정부를 아예 다시 만들자고 한다니. 그들의 요구는 결국 이승만 대통령을 거부하자는 것이지. 어찌 보면 명분도 중요한 듯하오. 단결이 중요한 시점이니 노 장군, 어쩌면 좋단 말이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노백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찌 되었건 내가 정부 각원으로 상해에 왔으니 대통령과 만나 보겠소. 김규식 동지도 같이 만나는 것이 좋겠지.”


며칠 후, 안창호는 김규식의 초대로 시내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김규식의 표정이 어두웠다. 안창호는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뇌병이 도진 것인가?’ 하고 김규식의 얼굴을 살폈다.

안창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먼저 물었다. “우사, 몸이 안 좋으신 모양이오. 안색이 어둡소.”

김규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형님, 태준이가 희생되었소. 울란바토르에서 연락이 왔소.”

안창호는 깜짝 놀라 허둥댔다. “아니, 왜요. 무슨 일입니까? 언제요?”

김규식은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자세한 정황은 아직 모릅니다. 듣자 하니 레닌자금 일부를 마저 운반하려고 병원에 들어갔다가 몽골을 접수한 러시아 백군에게 당한 모양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이오. 여동생은 무사하오? 레닌자금이 말썽이구려...!” 안창호는 안타까웠다.

“놈들은 레닌자금에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고 다만 몽골에서 이름난 의사라고 하니까 병원을 점령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레닌 금화는 왜 숨겼답니까? 쯧쯧. 형님은 이동휘 총리가 레닌자금을 수령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김규식이 물었다.

“몽양의 정보로 레닌이 임시정부 지원자금을 약속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소. 총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자세한 상황은 아직 모르고 있소.” 안창호가 무겁게 입을 뗐다.

“아마 지난 초겨울 1차 운반을 마친 것 같습니다. 그게 러시아 금화랍니다. 시베리아철도 이동 사정이 어려워 조금씩 나누어 운반했던 것 같습니다.”

“이동휘 총리가 내분을 빌미로 상해를 떠나 있는 것도 어쩌면 그 지원자금 수령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오. 그나저나 태준 군이 이 일로 희생이 되었다니 너무나 안타깝소.” 안창호는 중근의 일로 헌병대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풀려 났을 때, 이태준이 제중원에서 자신을 간호해 주던 일을 잊지 못했다. 이태준의 미소 띤 얼굴이 떠올라 마음 한켠이 시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김규식이 물었다. “형님은 이 시국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지금이라도 성의를 다하여 정부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소?” 안창호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원, 형님도! 그리 무심하게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묻는 것은 총리 후임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아주 시끄럽소이다. 이동녕 총장은 형님을 총리로 강력히 추천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신익희, 윤현진 등 청년들도 마찬가지고요.” 김규식은 여론을 파악하고 있었다.

안창호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관심 없소. 욕을 먹고 있는 사람이 총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총리를 내기 어려우면 대리 총리로 일만 하면 되지 뭐가 문제란 말씀이시오? 이동녕 선배가 총리 대리요. 우리는 그분을 따르면 됩니다.”

잠시 침묵하던 김규식이 다시 물었다. “노령과 북경 등 사방에서 임시정부를 다시 만들자고 하는데 형님은 어떤 입장이신 거요?”

안창호는 김규식에게 편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사, 내 생각으로는 말이오, 그들의 요설에 대응하기보다 한국, 중국, 소련 3국의 연맹 관계를 맺는 일이 더 급하오. 3국이 연합하여 항일 군사기관을 설치하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위치는 확고해지는 것 아니겠소? 연해주와 시베리아는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지역이 되었소. 듣자 하니 한인 청년들이 러시아 적군에 가세하여 빨치산부대로 일본과 싸웠다고 들었소. 이곳에 산재한 한인 청년들이 민족주의 기강이 선 고급 군사훈련을 받게 해야 합니다. 군법은 엄격한 것이지 않소. 노백린이나 유동열 등 중견들이 가서 군사기관을 설치하고 민족해방 운동의 기강을 세우면 좋지 않겠소?”

김규식이 말했다. “간도참변 끝에 다시 추스른 대한독립군단이 밀산에서 스보보드니(자유시)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몽양한테서 들었습니다.”

안창호도 안정근에게서 보고 받은 정보를 털어놓았다.

“문창범이 이들을 안전지대라며 이만(달네레첸스크)으로 안내했답니다. 이르쿠츠크파들이 이들에게 자유시에 군대주둔지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는데, 그런데 공산당 그룹도 두 개 파로 갈라져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다니 걱정이 태산이오. 그러니 정부 기강이 바로 서야 하지 않겠소?”

“대한국민의회 이르쿠츠크파와 상해임시정부 이동휘파라....” 김규식이 중얼거렸다.

“기강을 세운다는 뜻은 민족 정체성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오. 군 통합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임시정부의 기강이 서야 가능한 일이고. 사실 정부 기강이라는 것이 누가 총리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는 아니지 않소?” 안창호가 말했다.

“그렇군요.” 김규식이 체념한 듯 말했다.

“상해 정부는 만주와 시베리아 무장군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또 재정상의 이유로라도 축소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소. 워싱턴이나 파리 위원부도 축소하고.” 안창호가 다시 임시정부 현안을 언급했다.

“워싱턴이나 파리의 외교는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지요.”

“그렇소. 우리는 시야를 더 넓게 가져야 하오. 세계 패권의 변화와 코민테른의 확산. 우리 정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독립은 더 멀어지고 일본은 자치론으로 영구지배의 야심을 확고히 할 것이란 말이지.” 안창호는 그렇게 예측하고 있었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조만간 노백린 총장과 같이 이승만을 찾아가 보려고 하는데 정부 축소방안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김규식이 말했다.


(제 6장 마침.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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