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위로의 기술.

우린 타인을 내려다보면서 위로할 수 없다

by 더블와이파파

사회생활 초년기에, 누군가의 장례식장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슬픔에 잠긴 상주의 얼굴을 마주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

어떤 사람은 손을 꼭 잡아주었고, 또 어떤 사람은 조용히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나는 혼자 속으로 고민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몸부터 잘 추스르세요.’


이 말들이 혹시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그려봤다.

특히 유족을 잘 모를 때는 더 조심스러웠다.

어릴 적엔 부모님을 따라 장례식장에 갔기에 내가 나서서 위로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혼자 그 자리에 선 순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모두 내 판단에 달린 일이었다.

지금은 그 기억도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지만, 그 당시 내겐 꽤 진지하고 무거운 고민이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돼. 억지로 말하려 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은 시간이 지나서도 나에게 위로의 기준점이 되어준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키는 한 사람이 더 큰 위로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사람의 표정엔 이런 말이 담겨 있다.


‘당신의 고통을 다 이해해. 힘내. 함께 견뎌내자.’

그건 수많은 말을 담은 하나의 침묵이다.


위로는 상대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이다. 내 시선을 그 곁에 함께 머무르게 하는 일이다.

말보다 깊은 위로는, 함께 건네는 시선. 조용히 흐르는 시간.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주는 마음이었다.



저마다 삶이 괴로운 사정과 이유가 다르므로 위로의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위로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모범적인 위로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린 타인을 내려다보면서 위로할 수 없다. 위로의 언어는 평평한 곳에서만 굴러간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무턱대고 따뜻한 말을 쏟아내기 전에

상대와 마음의 높이부터 맞춰야 하는지 모른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곳을 향해 고개들 힘조차 없는 사람이다.

보편의 언어 ㅣ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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