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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진미 Aug 11. 2022

콘치즈_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콘치즈

부드럽게 부풀린 옥수수맛 과자 위에 노랗게 치즈가 흘러내린 채 굳은 콘치즈를 씹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사락, 사락, 부드러운 입자의 과자가 허물어지면서 쿰쿰한 냄새와 함께 누군가 자꾸만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과자 위에 늘어진 노란 치즈는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덮어 놓은 흔적처럼 보이기도.


동네의 골목은 거미줄처럼 엉켜있었다. 주로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며 골목 곳곳으로 숨어들었는데 골목과 골목을 뛰어다니는 건 매일 해도 질리지 않았다. 멤버는 이러했다. 나, 현주, 쌍둥이 우진과 우현, 그리고 골목 끝 집에 살던 은희는 첫째인데 밤늦게 돌아오는 부모님 대신 한참 어린 두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해서 자주 나오진 못했다. 하나를 등에 업고 하나의 손을 잡거나 둘 모두의 손을 잡고 나와서 놀다가 들어 간 적도 많았다. 우리가 골목 곳곳을 재빠르게 뛰어다닐 때도 은희는 동생들의 손을 잡은 채 항상 늦게 뛰어 오거나 칭얼대는 동생들 때문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유독 좁은 골목이 하나 있었다. 어른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골목은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어둡고 길고 기이한 형태였으므로 사실상 골목이라기보다는 틈에 가까웠다. 그 앞엔 전봇대가 하나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 속에 쓰레기를 던져 놓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숨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알 수 없는 서늘함에 아무도 그곳에 숨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가면 누구도 나오지 못한다는 오래된 소문도 한몫했다.


검은 골목. 우리는 그 좁은 골목을 그렇게 불렀다. 그곳을 보고 싶을 때면 5명 모두가 손을 꼭 잡은 채로 한 발쯤 떨어져서 목을 빼고 봐야 했다. 언젠가 현주네 집 대문이 열린 사이에 도망간 늙은 셰퍼드가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다. 앞집 할아버지는 그 개가 검은 골목으로 들어간 걸 똑똑히 봤다고 했고 어른들은 재수 없으니 그곳에서 놀지 말라고 했다.


가끔 은희가 그 골목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양손에 어린 동생의 손을 하나씩 잡은 채로 서 있기도 했고 하나를 업고 하나를 잡은 채로 골목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우리 가게는 골목의 대각선으로 30미터쯤 되는 곳에 있었는데 나는 매일 가게 앞 의자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했기 때문에 은희가 그곳을 가만히 보다가 집으로 가는 걸 종종 목격했다.


어느덧 우리는 열 살이 됐고, 엄마는 은희네 집에 동생이 하나 더 태어났다고 했다. 그 뒤로 왜인지 은희는 아예 놀러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은희를 잊고 있었을 무렵, 은희는 양손에 동생들을 하나씩 잡고 등에는 아주 작은 아기를 업고 나타났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반가워하며 다시 뛰었다. 하지만 은희는 더 느려졌고 몇 발자국 떼지 못한 채, 전보다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은희의 뒷모습이 울고 있는 것 같아 슬펐지만 갑자기 술래가 쫓아오는 바람에 나는 빨리 달아나야 했다.


그날 저녁 괜히 미안해진 나는 은희가 제일 좋아하는 콘치즈 한 봉지를 엄마 몰래 집어 들고 은희네 집으로 갔다. 은희는 ‘요기, 요 위에 치즈 부분이 달콤해서 맛있다’며 흰자위가 보이도록 눈을 크게 뜨고 앞니를 내밀며 바각바각 치즈를 긁어먹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은희가 과자를 반 봉지쯤 먹었을 때 방 안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들어가 봐야 해'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보던 은희의 얼굴이 갑자기 무섭게 변해서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달려 나왔다.


일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마음에 드는 과자 한 봉지를 골라 와삭와삭 씹으며 가게 밖에 앉아 있는데 멀리 검은 골목 앞에 또다시 은희가 보였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이상한 얼굴이었고, 품에는 작은 아기만 안은 채로 검은 골목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뭐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은희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만 돌려 이쪽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막 여러 명의 손님이 몰려와 내가 주춤주춤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고 다시 돌아보았을 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은희는 다시 놀 수 있다며 신이 나서 나왔다. 애기는? 내 물음에 은희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데려가서 이제 안

온다고 말했다. 은희는 신나게 뛰어놀았지만 곧 다른 동생들 때문에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아기를 안은 은희가 검은 골목 앞에 서 있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숫자를 1000까지 셌다. 그 뒤로 가끔씩 밤에 가게 앞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다 보면 희미하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잊은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 앞에 앉아 검은 골목 쪽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은희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검은 골목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콘치즈를 먹을 때마다 검은 골목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은희의 얼굴이 생각났다. 아삭, 깨물면 고소한 옥수수의 맛 뒤로 달콤한 듯 찝찔한 치즈 맛이 입안을 뒤덮었다. 달콤해서 좋다며 앞니로 노란 치즈를 바각바각 긁어먹던 은희가 떠올라 나도 앞니로 치즈를 사악, 갉아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잠이 들 때까지 엄마 등 뒤에 꼭 붙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밤마다 어디선가 희미한 아기 울음소리가 자꾸만 자꾸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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