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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l 01. 2018

Distractions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가끔 머릿속이 복잡할 때가 있다.

마치 나비 한 마리가 내 주변을 계속 맴도는 것처럼.


나비는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으로 날며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멀어지고, 또다시 얼굴에 충돌할 것처럼 달려들었다가 옆을 스쳐 하늘 끝으로 날아가 버린다. 생각은 앉을 꽃이 없는 나비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거나 정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폴 메커트니가 89년 발매했던 ‘Flowers in the dirt’는 그의 16번째 정규 앨범으로 미국에서는 크게 히트하지 못했는데, 타이틀곡인 My brave face도 빌보드 싱글차트 25위에 그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는 비틀스 느낌 물씬 나는 타이틀곡 보다는 Distractions 라는 곡을 더 좋아하는데, 이 곡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Distractions, Like Butterflies Are Buzzing 'Round My Head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늘 저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중대한 고민 같은 게 없어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는 중요한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단지 그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뿐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왠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말았는데, 갑자기 시작된 장마 때문인지, 이것저것 할 일들이 쌓여있기 때문인지, 해결방안 없는 일들이 떠올랐던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유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키고, 세탁기에 이불 빨래를 돌리고,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을 크게 틀었다. 마침 창밖의 비도 더 퍼붓는 바람에 집안은 시골 장터처럼 정신이 없어졌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플루트 소리에 집중하며 다음 주에 입을 셔츠의 카라를 다렸다. 셔츠를 반듯하게 엎어놓고 살짝 물을 뿌린 후 손으로 옷감을 자연스러운 배치가 되도록 만져주며 뜨거워진 다리미로 살짝 눌러준다. 생각보다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라 몇 벌 만지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 사이에 로봇 청소기도 작업을 마친 후 도크로 돌아왔고, 세탁기도 탈수까지 끝낸 채로 멈춰있었으며, 슬라브 무곡도 종장까지 연주를 모두 마친 채로 관객의 박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박수를 생략하고 카라가 빳빳한 옷가지를 다시 옷장에 넣은 후 탈수된 이불을 건조기에 집어넣고는 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건조기까지 멈추고 나면 집은 다시 오전처럼 조용해지고 빗소리만 들리게 될 테지만, 어떻든 상관 없었다. 이미 머릿속은 고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말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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