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술병의 마개 안쪽에는 숫자가 하나 쓰여 있는데 맥주의 경우 1~20, 소주는 1~50 범위 안쪽이다. 이는 마개 제조사의 금형 생산라인 넘버로, 술의 품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병의 바코드(생산시기, 공장, 생산라인, 책임자 정보가 들어있음)와 함께 조사를 하기 위한 기본 정보로 사용된다고 한다. 주종마다 번호의 범위가 일정한 것을 보면 주종별로 한 공장에서 마개를 독점 생산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오래전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누군가의 소개로 게임을 했었는데, 소주병 마개 안쪽에 쓰여 있는 그 숫자를 돌아가면서 맞추는 게임이었다. 그때 꽤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동료들과 술을 마실 때 그 게임을 제안했다.
'내가 마개 안쪽의 숫자를 볼 테니 차례로 그 숫자를 맞춰봐.'
'술을 마시게 되는 규칙이 뭔데?'
'누군가가 맞추면 그 양 옆의 사람이 마시면 돼.'
몇 번 돌았는데 이상하게 나만....
계속 마시게 된다.
우리는 세 명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건 수학적으로 심각하게 문제를 내는 사람에게 불리한 게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뭔가 중요한 규칙의 일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짜증이 나서 그 날은 대충 거기서 게임을 마무리하고 말았는데, 그 후 그 게임을 소개해줬던 친구에게 좀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게임의 룰이 정확하게 뭐였니?'
'두 바퀴 돌기 전에 누군가가 숫자를 맞추면 문제를 낸 사람이 마시는 거지.'
'두 바퀴 돌 때까지 아무도 못 맞추면?'
'물론 맞출 때까지 계속해야지.'
'그럼 결국 누군가가 맞추게 되면 또 문제를 낸 사람이 마시는 거야?'
'아니. 맞추면 맞춘 사람이 마시는 거지.'
'응? 맞췄는데 왜 마셔?'
'그러니까 안 맞춰야지.'
'.... 두 바퀴 돌기 전에는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두 바퀴 이후에는 안 맞추려고 머리를 쓴다?'
'나는 맞춰. 술이 마시고 싶거든.'
'넌 그럼 두 바퀴 전에는 안 맞추려고 하겠네?'
......
그건 뭔가 바보들의 대화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