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지나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당당하고 멋있고 환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커리어우먼. 능력이 출중해 서울에 내 집하나 마련해놓고 아침에는 간단한 토스토로 식사를 하고, 열정적으로 일에 매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나는 여전히 부모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울 집값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높으며 난 하루하루 생활에 버둥거리는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다.
어린 시절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꿈을 꾸던 꼬맹이. 그 아이는 현실을 망각한 채 꿈만 좇아 방송계로 들어와 작가란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다.
초급 80만 원에 3-4일 밤을 새도 난 방송을 만든다는 게 좋았다.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하고 구성을 하고, 그 내용이 그대로 방송에 나간다는 사실이 날 행복하게 했다.
그래서 박봉의 급여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빨리 나에게 찾아왔다. 작가 경력이 7-8년 되었을 때다. 나는 여전히 사생활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일 년의 대부분을 방송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활하다 어느덧 선임이 되었다. 그 말인즉, 내 연차를 찾는 프로그램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나마 위안은 급여가 올랐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니 작가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페이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기획이라는 명목 하에 방송 전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제 페이를 받지 못했고, 시청률, 시즌제의 압박에 매일매일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한번 일이 끝나면 언제 또다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압박도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은 하지만 돈은 제대로 못 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그럼에도 왜 방송작가를 그만두지 않느냐고? 난 아직 꿈꾸는 작가이기 때문인가 보다.
언제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내려놓지 못해서. 프로그램을 한 편 한 편 만들 때마다 느끼는 즐거움을 내려놓지 못해서. 나는 아직 가시밭길을 스스로 걷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방송작가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난 여전히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고 있다. 오늘도 겨우 뜬 눈으로 방 한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껴입고 노트북을 들고 출근을 한다.
이 불안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