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만은 않네...
1. 감기에 걸렸다. 어쩌다 걸린 지는 모르겠다. 한 겨울에 추운 줄 모르고 달려서일 수도, 교실 속 기침하는 아이들에게 옮았을 수도 있다. 덕분에 연말을 골골대며 보내야했다. 1월엔 300km 이상을 달리겠다는 비장한 다짐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역시나 타이슨이 옳았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2. 겨울은 너무 추웠다.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달리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요즘 공원을 달리러 가면 황량하다. 우리 동네는 특히 바람이 매섭다. 바람을 뚫고 달리는 게 사실 나도 무섭다. 12월에도 250km 이상을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감기 때문에 실패했다. 감기 '덕분에'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감기 '덕분에' 쉴 핑계가 생겨서 내심 좋았다.
3. 뭐든지 강제로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다. 컴퓨터 게임도, 만화책도, 19금 영화도 그렇다. 조금씩 꺼려지던 달리기도 강제로 못하게 되니, 빨리 하고 싶다. 빨리 나아서 달리고 싶다. 낫기만 하면 하루에 15km 아니 20km도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굳은 의지를 다지며 감기약을 먹는다. 이제 안 먹어도 될 것도 같지만, 남은 감기를 확인 사살하는 심정으로 먹는다.
4. 내일부턴 달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