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이 소중했던...
얼마 전 휴대폰에서 경고 메시지가 썼다.
‘기기의 저장 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처음부터 좀 더 용량을 큰 걸 살걸... 생각하며 안 쓰는 앱을 하나씩 지운다. 꽤 많이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좀처럼 저장 공간은 늘어나질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된다. 범인을 찾아야 한다. 휴대폰 설정에 들어가니, 저장 공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그래프가 있었다. 범인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휴대폰 저장 공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난 별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저장된 사진을 본다. 참 많다. 오래된 추억부터 오늘의 순간까지 모두 남아있다. 안타깝지만, 지워야 한다. 하나둘 골라낸다. 찍어놓고 한 번도 다시 보지 않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언제든 찍을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안 보게 된다.
셔터 한 번 누를 때 아주 신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작은 구멍에 윙크해야 했던…. 한 번 찍고 태엽 감듯이 필름을 감아야 했던…. 사진을 찍고 나서 잘 나왔는지 바로 확인할 수도 없던…. 동그란 통에 필름을 담아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에 들어가던…. 모두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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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여행을 좋아했다. 주말만 되면 우리 가족을 데리고 전국을 누볐다. 그때 꼭 필름 카메라를 챙겼다. 실수로 챙기지 못했더라도 괜찮았다. 관광지엔 늘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파는 아저씨들이 계셨다.
멋진 풍경이 보이면 아빠는 언제나 우리를 멈춰 세웠다.
“여기 한 번 서봐!”
엄마, 누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아빠를 바라보며 돌아섰다.
아빠는 아주 작은 카메라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고 외쳤다.
“하나, 둘, 셋! 김치~~”
지금 보니, 아빠만 안 나온 사진들이 참 많다.
그땐 ‘찰칵’하는 타이밍에 ‘김치’라고 외쳤다. ‘김치’ 대신 ‘치즈’를 외치기도 했다.
‘치’ 발음을 하면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가 미소 짓는 효과가 있어서 그런 듯하다. 하지만 각자 마음속 박자가 미세하게 다르다 보니, ‘김’을 외치는 타이밍에 셔터가 눌려 입이 오므려진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오히려 미소보다 ‘치’를 외칠 타이밍에 더 집중하다가 표정이 굳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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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도 없으니, 제대로 찍은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면,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사진관 아저씨는 봉투에 인화한 사진과 우리가 맡긴 필름을 넣어주셨다. 약 봉투처럼 생긴 봉투를 들고 기대감과 함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꺼내 보았다. 참 웃긴 사진이 많았다. 눈 감은 사진, 옆을 돌아본 사진, 빛이 잘못 들어가 하얗게 변해버린 사진. 그중에 잘 나온 사진을 고르는 것도 우리의 임무였다. 고르고 골라 살아남은 사진들은 포근한 앨범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쉬며 가끔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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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좋은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찍을 수 있다. 멋진 장소를 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우린 바로 스마트폰을 꺼낸다. ‘찰칵’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도 바로 가능하다.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는다. 무겁게 앨범에 넣을 필요도 없이 휴대폰에 저장된다. 터치 몇 번이면 사람들과 공유도 가능하다. 화질도 그 시절 필름 카메라와 비교가 안 된다.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왜 갑자기 또 필름 카메라 생각이 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