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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철가방은 철이 아니었다...

by 비둘기

철가방은 중국집의 상징이었다. 중국집에서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등 모든 음식을 철가방에 담아 배달했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철가방에서 음식을 꺼내던 배달원 아저씨. 짜장면, 탕수육, 깐풍기, 팔보채 등 꽤 많은 음식을 시켜도 철가방 하나면 해결되었다. 끊임없이 음식이 들어가는 마법의 가방.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메인 MC는 유재석 씨였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코너 중 하나는 철가방 퀴즈였다. 철가방 속에 어떤 물체를 넣는다. 유재석 씨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철가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슬쩍슬쩍 뚜껑을 열었다 닫는다. 출연자들은 살짝살짝 보이는 물체를 맞히기 위해 모든 집중력을 쏟아붓는다. 나도 TV 속 그들과 함께 퀴즈에 참여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철가방. 엎드려서 보면 아랫부분이 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해서 늘 방바닥에 엎드려 TV 속 철가방을 봤다.





비밀 하나 말한다. 사실 철가방은 철이 아니다. 철은 튼튼하지만, 너무 무겁다. 음식 무게를 잘 견디면서도 가벼운 물질. 바로 알루미늄이다. 하지만 알루미늄 가방이라고 하자니, 너무 길다. 멋지지도 않다. 철가방. 이 얼마나 간결하고 멋진 이름인가. 진실보다 멋이 중요한 순간도 있는 법이다.



철가방이 생기기 전에는 나무로 만든 가방으로 배달을 했다고 한다. 나무 가방보다 5배 정도 가벼운 철가방이 나타나자. 나무 가방은 사라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철가방보다 더 가벼운 놈이 나타났다. 바로 플라스틱 가방. 그때부터 철가방은 서서히 외면받았다. 가방 세상도 인간 세상처럼 끊임없는 경쟁 사회였다.


2010년대 후반부터 배달 앱과 배달대행업체가 생겨났다. 예전처럼 음식점에서 배달원을 고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스템이 달라지자 도구도 달라졌다. 이젠 오토바이 자체에 네모난 배달용 상자를 달고 비닐에 담긴 음식을 배달한다.



이젠 철가방도, 군만두는 서비스라며 생색내던 배달원 아저씨도, 짜장면을 다 먹고 그릇을 한 번 헹궈서 내놓던 배려도, 깜빡하고 내놓지 않아 중국집에서 전화가 오던 순간도, 내놓은 그릇을 며칠째 가져가지 않아 중국집에 전화하던 해프닝도, 아차차 깜빡했습니다. 얼른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던 중국집 사장님의 당황한 목소리도. 다 추억 속 풍경이 되었다.




프로레슬링에 ‘체어샷’이라는 반칙 기술이 있다. 심판이 한 눈을 판 순간 철제 의자로 상대방을 세게 치는 기술이다. 좋아하는 선수가 악랄한 악역 선수에게 시원한 체어샷을 날리는 순간. 나는 통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중국집 요리사처럼 갖춰 입은 선수. 그의 이름은 ‘철가방’. 그의 필살기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을 눈을 피해 악당에게 날리는 시원한 철가방 샷. 철가방으로 악당들을 두들겨 패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철가방' 단숨에 슈퍼스타 레슬러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이제 '슈퍼스타 철가방'이라 부른다.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아이는 산타에게 기도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철가방을 받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철가방과 소멸 직전인 한국 프로레슬링. 이 모두를 살릴 방안.

'슈퍼스타 철가방'.

이거 완전 대박인데. 이거 진짜 대박인데.



혹시 한국 프로레슬링을 다시 한번 부흥시켜볼 레슬러가 있다면 연락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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