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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전화

여전히 어딘가엔 남아있는...

by 비둘기

한 제자가 기억난다. 남학생이었다. 6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으레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아이는 아니었다. 혼자만 휴대폰 없는 상황이 쓸쓸할 법도 한 대, 그 아이는 전혀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 짓궂은 친구들이 휴대폰이 없다 놀려도 해맑은 미소로 화답했다.

“(활짝 웃으며) 엉엉. 나만 휴대폰 없어!”

어떻게 하면 그 아이처럼 타인을 대할 수 있을까. 나에겐 아직도 숙제다.


한 번은 그 학생 어머니께 전화가 온 적이 있다. 휴대폰의 유해성 때문에 사주지 않고 있는데, 혹시나 학교에서 휴대폰이 필요하진 않을까 걱정되어 연락하셨단다. 아주 훌륭한 교육방침이시라고,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고.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학교에는 태블릿도 많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대답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때쯤 그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저 핸드폰 샀어요! 선생님 번호 좀 알려주세요!”

내 번호를 알려주며, 그 아이 표정을 봤다. 원래 뽀얀 얼굴이 두 배는 밝아 보였다. 그동안 괜찮은 척하더니, 갖고 싶긴 했나 보다. 미리 말을 하지. 그럼 엄마가 전화 주셨을 때 이렇게 답했을 텐데.

“아.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도 가끔 스마트폰을 쓰기도 합니다. 아이들 보니까 친구들 만날 때도 대부분 카톡으로 약속을 정하더라고요.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훨씬 좋죠.”



미안한 마음에 변명 하나 한다. 라떼는 말이야. 초등학생은 휴대폰이 없는 게 당연했다. 진짜로 아무도 없었다. 집 전화기로 친구들과 통화했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꼭꼭 약속했다. 약속 시간에 친구들이 나오지 않으면 근성으로 기다렸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렸다. 그래도 친구가 안오면 친구 집 앞까지 찾아갔다.


정 급할 땐, 공중전화가 있었다. 네모난 전화부스는 어디에나 있었다. 왼쪽엔 커다란 수화기가 있고, 오른쪽엔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카드를 넣어도 되고, 동전을 넣어도 된다. 얼마였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100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100원을 넣으면 얼마를 거슬러줬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을 못 하는 까닭은 기억력이 안 좋아서만은 아니다. 100원도 소중했던 어린 시절, 우린 돈 없이도 전화를 할 수 있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콜렉트콜.

콜렉트콜은 전화를 받는 사람이 통화료를 대신 내는 방식이다. 공중전화에서 긴급통화 버튼을 누르고, 1541을 누른다. 그러면 노래와 함께 안내가 나온다.

“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고, 우물 정자를 눌러주세요.”

그대로 따라 하면 아주 잠깐 통화 연결이 된다. 이때 재빠르게 나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여보세요! 엄마 나 비오! 이거 콜렉.”

통화가 끊기고 노래가 흘러나온다.

“따라따라따라 딴 따라~~, 상대방의 통화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내기란 만만치 않았다. 잠깐의 통화가 끊기는 순간 대부분 전화를 끊어버렸다. 우린 본능적으로 ARS 음성에 거부감이 있다. 전화 도중에 나오는 기계음은 스팸 전화로 의심받기 충분했다. 나는 언젠가 길을 잃어 엉엉 울고 있을 미래를 떠올렸다. 집을 찾아 오려면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해야 할텐데. 지금처럼 콜렉트콜을 끊어버리면 곤란하다. 콜렉트콜 받는 방법을 꼭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내가 전화해서 콜렉트콜이라고 하고 통화가 끊기면, 일단 끊지 말고 기다려봐.”

“아빠, 그다음에 음성이 나오면 거기서 하라는 대로 누르면 돼.”

그 뒤에도 몇 번의 실패를 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콜렉트콜에 익숙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도 머리가 좋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수많은 친구의 전화번호를 모두 기억했다. 하지만 모두 나처럼 머리가 좋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그들을 배려해서 공중전화 옆에는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요즘 총균쇠나 코스모스 같은 두꺼운 책을 벽돌 책이라 부르던데, 진정한 벽돌 책은 전화번호부다. 세상 모든 이들의 전화번호를 담았으니, 두꺼울 수밖에.



전화번호부의 무시무시한 두께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어느 집에 칼을 든 강도가 들어왔다. 놀란 가족들은 일단 방으로 숨었다. 방 안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가족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전화번호부. 그는 이 두툼한 책을 집어 들고 용기 있게 거실로 나갔다. 강도가 칼을 휘둘렀지만 전화번호부로 가볍게 막아냈다. 날카로운 칼도 전화번호부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곧이어 바로 아버지는 전화번호부 모서리로 강도의 머리를 강타했다. 강도는 바로 기절했고, 경찰에 신고하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며칠 뒤, 전화번호부에 맞은 강도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동안 사람들은 '전화번호부로 사람을 내리친 행동이 정당방위인가 아닌가', '전화번호부는 과연 흉기인가 아닌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사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다. 이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에 10명 중 8명은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전화번호부의 두께는 어마어마했다.


이제는 커다란 전화기도, 무시무시한 전화번호부도 작은 기계 속에 모두 담겼다. 군대에서 그 작은 기계를 빼앗기자, 다시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갔다. 온종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 나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처럼 전화번호를 수첩에 받아적고, 외우고, 콜렉트콜을 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지금의 아내에게도. 전역이 가까워질 때쯤, 군대에서도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밤, 줄 서있던 군인들로 붐볐던 공중전화 앞은 황량해졌다.

지나가다 우연히 공중전화를 보면 생각한다.

‘지금도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혹시 사용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글로 마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여전히 글에서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나처럼.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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