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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살고 싶은가?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를 보고

by 비둘기

어린 시절 아빠와 등산을 자주 갔다. 하루는 산을 오르는 중 아빠가 한 영어 강사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안현필이라는 강사가 있었어."

아빠는 안현필 선생의 이력을 줄줄 말했다. 그는 <영어실력기초>라는 영어 문법책을 썼다. 영어 문법 설명에 안현필 선생의 잔소리를 덧붙인 교재는 불티나게 팔렸다. 성문종합영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영어 참고서 시장의 독보적 1위였으며, 성문종합영어가 나온 이후에도 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대한민국이 고루 가난했던 시기, 안현필 선생은 큰 부자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아빠가 말한 스토리의 전반부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심장병에, 당뇨에..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어."

몸을 돌보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자수성가한 부자가 병에 걸린다는 이야기. 결국 돈보다 소중한 건 건강이었구나... 깨닫는 이야기. 안타깝지만 의외로 많은 이야기. 그래서 크게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 아빠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난 결코 그날을 지금까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돈이 많잖냐. 여기저기 좋은 의사들을 찾아 다녔지. 그래도 몸이 계속 안 좋아졌대."

이제 이야기의 '기', '승'이 완성되었다. 나도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제 '전'이 나올 차례다.

"근데 그 사람이 워낙 똑똑했거든. 자기가 직접 자기 몸을 고치겠다고, 시골로 내려가서 건강 관련된 책을 미친 듯이 읽고 연구했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 속에 파묻혀 수련을 하는 주인공. 결국 엄청난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는다. 무협지와 타짜에서 많이 본 스토리다. 그도 과연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러더니 몇 년 뒤에 사람이 튼튼해졌어. 건강 비법들을 신문에 쓰고, 책도 내고. 나도 그래서 그 책 열심히 읽었지."

아빠는 안현필 선생이 말했던 건강 비결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했다. 현미밥을 먹고, 식초를 마시고, 자연식을 먹고, 매일 운동을 하고. 얼추 이야기가 마무리 되던 그 순간 아빠는 한 마디를 더했다.

"그 사람이 늘 하던 말이 있었어. '저는 반드시 150살까지 살 겁니다!'. 80이 넘어도 쌩쌩해서 진짜 150살까지 살 것 같았다니까?"

나는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죽었어."

허무한 결말이었다.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머리 속에 가득 찼다.


'교통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살아 있을까?'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봤다. <브라이언 존슨: 영원히 살고 싶은 남자>라는 제목의 다큐였다. '브라이언 존슨'은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번 억만장자다. 그는 노화를 거부한다. 죽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브라이언 존슨은 엄격히 통제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청난 돈과 자신의 삶 전체를 쏟아부어 이 실험에 나선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수면의 질을 확인하는 검사를 한다. 매일 100알이 넘는 알약을 먹는고, 음식도 철저히 계산해 먹는다. 정해진 운동을 하고, 운동 후 상태를 또다시 검사한다. 30여 명의 의사와 과학자가 그의 건강을 체크하고, 최적의 방법을 만들기 위해 연구한다. 젊은 아들의 혈장 이식도 하고, 아직 충분한 임상 실험을 거치지 않은 유전자 주사도 맞는다. 브라이언 존슨은 기꺼이 실험체가 된다.



누구 욕할 사람 어디 없나 벼르고 있는 요즘 시대에 브라이언 존슨은 좋은 떡밥을 던져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 '그의 행동은 죽음이라는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 '다양한 시도를 한 번에 하는 그의 실험 방식이 결코 과학적이지 못하다.' 같은 품위있는 비판도 있다. 그가 단지 관종일 뿐이라거나,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는 장사꾼일 뿐이라는 일부 타당한 비판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욕할 대상에 목마른 사람들의 악질적인 비아냥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그러다 버스에 치이면 정말 꼴보기 좋겠네."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브라이언 존슨은 오히려 되묻는다.

"내일을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사실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이다. 노화가 천천히 오길 모두가 바란다. 어제 없던 거울 속 주름을 보고 슬퍼한다. 조금씩 힘을 잃는 육체를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순리인 걸 알기에 받아들인다. 이게 우리가 노화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다.



조선 시대 평균 수명은 약 35세 정도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100세 시대가 되었다. 100세 까지 산다고 해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200년 전만 해도 천연두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백신이 개발되고, 1979년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했다.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을 그 누구도 '추하다'거나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훗날 의학이 '노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인류가 젊고 건강한 몸으로 죽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린 이걸 '추하다'는 이유로 거부할 것인가? 우리도 젊고 건강한 삶을 굳이 마다 할 것인가?



브라이언 존슨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궁금하다. 부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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