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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의 군자

군자는 정성을 다해 행할 뿐...

by 비둘기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군자(君子)는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정성을 다해 행할 뿐,

그 외의 것은 원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설날에 고향을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간식을 먹었다. 임영웅 씨의 콘서트 여정을 담은 영화도 봤다. 영화 1부가 끝나고 집을 나왔다. 이틀 전 예약한 숙소로 갔다. 숙소는 고향집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다. 숙소 앞에 도착하니 아내가 편의점을 들르자고 했다. 폼클렌징을 사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숙소에 있지 않을까?"

"없을 것 같은데... 지난번에도 없었던 것 같아."

숙소 바로 앞에 세븐일레븐이 보였다.

"저기로 가보자."



편의점에 폼클렌징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종류가 많지 않고, 가격이 비싼 편이다. 우리가 원래 쓰던 제품도 아닌데, 딱 한 번의 세수를 위하여,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 한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올바른 판단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선 들어가 보고, 내키지 않으면 사지 않기로 했다. 숙소에 작은 샘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으면 하루쯤은 안 씻어도 되고.



편의점엔 우리가 쓰던 제품이 있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한국보다 훨씬 싸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사 왔던 폼클렌징이었다. 가격표를 보았다. 3,600원. 생각보다 저렴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싼 거 같은데? 우리가 일본에서 샀을 때 얼마였지?"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싼 건 맞아."

더 이상 고민은 필요 없었다. 폼클렌징을 집어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가격표를 찍어보니 9,000원이 나왔다. '그래. 3,600원은 너무 쌌어. 말이 안 됐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배가 넘는 가격을 보니 사기가 망설여졌다. 게다가 저기 분명히 3,600원이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다.

"혹시 저기 3,600원이라고 쓰여있는 제품은 다른 건가요?"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대충 한 번 살펴보고

"다 떨어진 것 같네요."

라는 흔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 대답을 듣고

"아. 그럼 다음에 오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하며 아무 물건도 사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없이 빠져나오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큰일이 난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코드를 빼서 찍어보고, 창고에 들어갔다오고, 올려져 있는 다른 제품의 가격을 모두 찍어보았다. 그래도 3,600원 폼클렌징은 찾지 못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 이 파란색 폼클렌징이랑 비슷하긴 한대요. 왜 없지?"

최선을 다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에 뭐라도 하나 사야 하나 고민이 깊어질 무렵, 그는 말했다.

"편의점 물건이 조금 비싸서 추천해 드리기가 조금 그래요. 저기 아래에 내려가면 다이소가 있어요. 아마 아직 문 열었을 거예요. 거기서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공자님께선 말씀하셨다.

"내가 성인聖人을 만나볼 수 없으면 군자君子라도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날 난 군자君子를 만났다. 그 기쁨에 편의점을 나오며 평소보다 1.2배 정도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숙소엔 폼클렌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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