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강사 시험 날이 되었다. 시험 보는 건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도 지적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강사들과 원장 앞에서 문제 풀이를 하는 게 부담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수업도 없는 이른 시간부터 출근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학원으로 옮길까도 고민했다. 강사 구인 공고 사이트 ‘강사 마을’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하지만 그다지 나은 조건은 없었다. 또 그런 식으로 몰래 빠져나가면 학원가에 분명 소문이 돌 것이었다. 일단 버티는 수밖에 없다. 사실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강사들에게 주는 시험지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을지. 영어 강사 출신인 원장은 수학 문제를 만들 능력이 없다. 아마 문제 출제는 일등학원 수학과 실장인 박원석 강사가 맡을 것이다. 실장이란 직함이 다른 기업처럼 의미 있진 않다. 그저 경력이 많고, 나이가 많을 뿐이다. 그가 낼 문제는 뻔하다. 분명 문제집 여기저기서 짜깁기해서 만들 것이다.
강사들은 수험생처럼 지정된 강의실에 모였다. 원장과 선임 강사들이 시험지를 들고 있었다. 나도 다른 강사들처럼 조용히 줄을 서서 시험지를 받았다. 원장은 또 한마디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 제가 했던 제안을 받아들여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학원의 실력 있는 선생님들이라면 당연히 동의하실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학생처럼 시험 보는 것. 실력 없는 강사들은 꿈도 못 꿀 겁니다. 이 강사 평가 제도가 우리 학원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시험은 시작되었다. 문제를 받자마자 나는 바로 눈치챘다. 전부 그냥 수능과 모의고사 기출문제였다. 그래도 ‘킬러 문항’이라고 불리는 문항들을 골라낸 노력 정도는 한 듯했다. 강사라면 당연히 풀 줄 알아야 하는 문제들. 수도 없이 반복했던 문제들이다. 너무 익숙한 문제라서 풀지 않고도 답이 떠오를 정도였다. 대충 연필을 돌리며 암산으로 풀어나갔다. 뒤에선 자꾸 찰칵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촬영을 맡은 조교 한 명은 내 옆까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분명 우리의 시험 보는 뒷모습은 학원 블로그에 올라갈 것이다. 이제는 유튜브까지 올라갈 것이다. 10문제를 푸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올 때, 몇몇 강사들은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으며 풀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문제 해설 시간이 다가왔다. 해설하기 직전, 내가 풀었던 시험지를 다시 받았다. 채점이 완료된 상태였다. 당연히 다 맞았다. 주위를 쓱 둘러보니, 그렇지 않은 강사들도 있었다. 그들 중엔 SKY 출신 강사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참 그렇다. 고등학교 때 본 시험 결과가 평생을 따라붙는다. 고등학교 때 한 번 밀려난 이들이, 그들을 추월하기 위해선 훨씬 더 큰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심지어 그들보다 충분히 나은 능력을 갖춘 이후에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무시당한다. 참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하며, 칠판 앞으로 나갔다. 원장은 4번 문제를 설명해보라고 했다. 2022년 수많은 수험생을 울렸던 미적분 킬러 문항이었다. 나는 차분히 문제를 풀었다.
“이 문제는 미적분의 기본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 이제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설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하면 수학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말이 길어진다. 기초가 부실하니, 이를 가릴 다양한 스킬을 부린다. 수험생들은 이에 현혹된다. 나는 그런 사기꾼이 아니다.
설명이 끝나자, 돌아가며 피드백을 했다. 풀이에 대한 피드백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은 괜한 꼬투리를 잡아서 나를 공격했다.
“선생님, 저 문제가 물론 선생님한테는 쉽겠죠. 그래도 그런 말은 애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학생들에겐 충분히 어려운 문제였어요.”
원장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선생님은 내가 인정하는 수학 천재예요. 선생님한테는 어떤 문제가 어렵겠어요. 그래도 그런 식의 발언은 좋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며칠 뒤, 영상이 올라왔다. 수많은 강사들의 해설 영상 중 하나였지만, 유독 내 영상만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등학원. 천재 수학 강사 등장!!>
화면 속엔 편집된 내 모습이 나왔다. 시험지를 받고 연필을 두 번 정도 휙휙 돌린 후에, 바로 답을 써가는 모습. 10분 만에 모든 문제를 다 풀고, 강사 중에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하는 모습. 칠판 앞에서 ‘이 문제는 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닙니다.’라며 당당히 말하는 모습. 그리고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 이를 빠르게 이어붙이니, 정말 내가 천재처럼 보였다. 댓글도 폭발했다. ‘목동에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거북목에 살짝 굽은 등, 무조건 수학 천재임.’, ‘수학을 저렇게 담백하게 풀 수 있다니…’, ‘저거 000 강사는 해설 강의에서 20분 동안 풀었는데….’ 수없는 찬사가 가득했다. 물론 악플도 있었다. ‘지만 잘 풀면 뭐 하나.’, 저런 사람은 학생 마음을 이해 못 해서 잘 못 가르침.’, ‘강사라는 사람이 필기가 그게 뭐냐.’ ‘발음이 저래서 애들이 알아 듣겠나?’ 뼈를 때리는 말들에 상처도 받았지만, 처음 받아보는 관심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영상은 빠르게 퍼졌고, 조회 수는 일주일만에 37만을 넘겼다.
학원에도 변화가 생겼다. 내 강의를 듣겠다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강사 반의 학생들이 나에게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러 오기도 했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이 그랬다. 20개의 책상밖에 없던 내 강의실은 100개의 책상이 있는 강의실로 바뀌었다. 원장은 내게 둘이서 저녁 한 번 먹자고 말했다. 처음 느껴보는 알고리즘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