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제작기 04
그래서, 공주가 원하는 건 뭔데?
지난번 제작기 03에서는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만화로 재해석하면서 중점적으로 바꾼 부분을 짚어보았다.
https://brunch.co.kr/@dozagi925/63
지난 제작기에서 소개한 대로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를 각색하면서 마녀와 공주 두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무수한 동화 속에서 전형적인 악역으로 묘사된 마녀에게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주인공의 조력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고, 왕자에게 구출되는 수동적인 인물상에 머물렀던 공주 니네타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위치를 주었다.
이렇게 원작과 등장인물의 역할이 달라지면, 단순히 그 역할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역할 속에서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는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주인공인 공주 니네타에게 초점을 맞추어, 원작과 비교해 그의 여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인공이 왕자에서 공주로! 이걸로 충분할까?
앞서 말했듯이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원래 주인공은 왕자지만,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는 주인공을 공주인 니네타로 바꾸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주인공을 공주로 바꾼 것만으로 충분할까?
사실 만화 작업 초반에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단순히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는 것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먼저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을 공주(여성)로 바꾸고, 주인공에 의해 구출되는 인물을 왕자(남성)로 설정해볼 수 있다. 보통 동화 속에서 왕자(남성)가 공주(여성)를 구하는 것에서 성별을 역으로 바꾸는 것이다.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 공주가 왕자를 구하는 과정은 이렇다.
공주 니네타는 마법사에게 '세 개의 오렌지를 사랑하게 된다.'는 저주를 받는다. 이 저주로 인해 니네타는 사랑하는 세 개의 오렌지를 찾으러 모험을 떠난다. 세 개의 오렌지는 무시무시한 괴물 요리사 크레온타의 성에 있는데, 니네타는 우여곡절 끝에 이 세 개의 오렌지를 구해내 그중 하나를 무사히 왕궁에 가져온다.
그리고 왕궁에서 오렌지를 가르는 니네타!
그리고 오렌지 속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왕자였다!!
마법사가 말한 '세 개의 오렌지'는 단순히 과일 오렌지 세 개가 아니라, 마법에 걸린 왕자가 들어있는 오렌지 세 개였던 것이다.
즉, 니네타는 오렌지 속에 갇히는 마법에 걸린 왕자를 구해낸다.
원작에서는 오렌지 속에 갇힌 공주를 구해낸 왕자가 바로 그 공주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렇다면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 니네타 역시 자신이 오렌지 속에서 구출한 왕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날까?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질문.
바로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의미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이다.
2. 사랑이 뭐길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만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이 만화는 제목부터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있고, 마법사의 저주에도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그만큼 이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이야기의 방향과 결말을 정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고, 과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무엇을 보면서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이렇게 사랑을 잘 모르는 내가 '사랑'이라는 소재가 중요한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읽었던 책 덕분이었다. 이 책들을 통해 나는 사랑에는 정말 다양한 얼굴이 있고,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
https://brunch.co.kr/@dozagi925/44
그래서 위 글을 적고 난 이후 더 이상 사랑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금 내가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면 앞으로 배워가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만화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작업을 모두 마친 지금, 나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 사랑은 도대체 뭘까?
그렇게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만화 작업을 계속해나갔고, 점점 더 만화의 결말, 이 사랑의 결말을 정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이 만화 속 사랑의 결말은 다음과 같다.
1. 공주와 왕자가 결혼한다.
2.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지 않는다.
먼저 만화 속에서는 원작처럼 공주와 왕자의 결혼 가능성이 등장한다.
공주는 왕자의 프러포즈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전형적인 동화 속 해피엔딩이라면 공주는 이 프러포즈에 승낙하고 둘은 결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만화의 주인공을 왕자에서 공주로 바꾼 의미가 사라진다. 굳이 주인공의 성별까지 바꿔 이야기의 무언가를 바꾸어 보려고 시도했는데, 그 결말이 원작과 똑같이 공주와 왕자의 결혼이라면, 그동안 했던 모든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내게 공주와 왕자가 결혼한다.라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었다.
(참고로 만화 속에서 공주가 왕자의 프러포즈를 거절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단순히 'NO'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작 속 프러포즈 과정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조금 드러내 보았다. 어떻게 공주가 프러포즈를 거절하는지는 만화를 읽어주시길 바란다.^^)
여하튼 그러면 남은 건 두 번째 선택지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지 않는다. 일 것이다.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원작과 다른 결말을 맺는 것은 좋다.
그렇다면 이 기나긴 여정 동안 공주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떠나 마법에 걸린 세 개의 오렌지를 구해온 것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한 잠깐의 일탈에 불과했을까?
여기서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만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제목의 '사랑'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일단 마법에 걸려 오렌지 속에 갇혀 있던 왕자는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어 단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사랑의 대상이 바로 '오렌지' 그 자체라고!
이 발상의 전환 과정을 만화 속에도 그대로 담았다. 힌트를 준 사람은 바로 마녀, 파타 모르가나이다.이 발상의 전환에서 실마리를 잡고 이야기의 결말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랑한 것이 '오렌지'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니네타는, 오렌지를 먹고 남은 씨를 땅에 심는다.
씨를 심어 다음 오렌지를 수확하는 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오렌지를 길이길이 남기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니네타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렌지 씨앗을 심어 밭을 가꿀 즈음 니네타는 더 이상 드레스를 입은 공주의 모습이 아닌, 햇볕을 가리기 위한 밀짚모자를 쓰고 밭을 일구기 편한 복장을 입은 모습으로 변한다.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니네타의 행동은 물론, 모습까지 변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니네타가 심은 오렌지 씨앗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그 결말은 만화책에서 직접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세 개의 오렌지를 향한 니네타의 여정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 그 과정과 고민을 살펴보았다.
다음 글은 드디어 독립출판 제작기 마지막 시간!
작업 과정에서 쌓인 콘티와 초기 구상 과정에서 그린 B컷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마지막 글까지 즐겁게 읽어주시길~
만화책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아래 링크에서 판매중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읽고 책이 궁금해지셨다면 많은 구매 부탁드려요~
구매는 다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https://indiepub.kr/product/detail.html?product_no=3059&cate_no=64&display_group=1
https://sidebkr.imweb.me/books/?idx=1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