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과의 전쟁

‘먹신(神)’ 고양이 돌려주세요

by 인플리
이걸 안 먹는다고?!


아직도 리지가 치킨 캔을 처음으로 반쯤 남긴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전까지 리지는 ‘본투비 먹신(神)’이었기 때문이다. 고기든 생선이든 주자마자 가리지 않고 밥그릇에 코를 박고 해치우는 건 기본, 바닥에 찰박거리는 육수까지 싹싹 핥아먹어 설거지가 수월했다. 한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여러분의 냥이는 ‘치킨파’인가요, ‘참치파’인가요?’란 게시글을 보며 난 속으로 이렇게 답했다. ‘먹파’요. 그냥 먹는거면 다 좋대요…



그런데 1살 무렵, 리지는 갑자기 ‘강경 참치파’로 돌아섰다. 참치만, 혹은 ‘참치와 닭고기와 치즈’, ‘참치와 뱅어’, ‘참치와 오징어’처럼 참치에 다른 재료가 섞여 있는 캔만 먹었다. 그 외엔 닭고기를 좀 먹어주는 정도.

리지가 3시간째 한 입도 안 댄 정어리 캔을 통째로 버린 어느 날엔 마음이 쓰렸다. 어릴 적 들었던, 죄책감을 주입하는 ‘편식 잔소리 레퍼토리’를 내뱉을 뻔했다.


“어부 아저씨가 얼마나 고생해서 잡으신 건데…”

“아프리카엔 먹을 게 없어서 굶는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


사실 리지가 캔 값 버느라 고생한 내 마음을 몰라준 게 가장 원망스러웠지만, “집사가 고생해서 사 왔는데 먹을께”라고 리지가 대답할 날은 천지개벽 정돈 일어나야 올 것이었다. 반쯤 포기한 채, 잘 먹는 참치만 먹이자고 하자 남편이 걱정스레 말했다.


“참치가 상어, 고래 빼면 바다에선 최상위 포식자인데, 그럼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거거든. 먹이사슬 위에 있는 생선일수록 아래 있는 애를 잡아먹으면서 수은 같은 중금속이 몸 안에 점점 쌓여. 그러니까 참치 정도면 다른 생선보다 몸 안에 중금속이 많지. 예전에 미국에선 임신부한테 참치 섭취량을 제한하라고 한 적도 있어.”


아차. 계산을 해보니 매일 70g짜리 캔 2개를 먹는 리지가 참치캔과 참치와 다른 재료가 반반씩 섞인 캔을 하나씩 먹는다면 매일 먹는 참치 양이 105g이었다. 5kg인 몸집에 비하면 너무 많은 양이었다. 심지어 남편과 나도 둘이서 100g 정도 하는 참치 캔을 1주일에 한 번 반찬이나 찌개로 먹을까 말까였으니.


우린 리지의 입맛을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의, 참치 외 다른 재료로 만든 캔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먹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고기류는 말고기, 토끼고기도 있었고, 생선류는 참돔, 게살, 역돔도 있었으니까.


물론 ‘자나 깨나 참치 사랑’ 리지는 새로운 식재료를 쉽게 반기진 않았다. 냄새가 자기 취향이 아닌 음식이 담겨 나오면 밥그릇 근처도 가지 않는 단호함으로 ‘깊은 빡침’을 불러일으켰으니까. 참치로 바꿔 달라고 떼쓰지도 않고 그대로 그 끼니를 굶어버리기도 했다. 독한 냥……


만만치 않게 가려먹는 반려견 ‘생강이’를 키우면서 “편식이 심했던 유년시절을 반성하게 됐다”라고 한 전 회사 팀장님이 떠올랐다. 어릴 적 콩밥에서 콩을 골라내서 혼난 기억이 떠올랐다(설마, 그 콩 개수만큼 리지가 캔을 그대로 남기는 벌을 돌려받고 있는 걸까.)


리지가 한 입도 안 댄 밥그릇을 여러 번 치우고, 부족한 칼로리를 건사료나 간식으로 대체하면서 리지를 자주 원망했다. 대체 왜 머리는 머리대로 굴리고,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쓰는데도 편식은 안 고쳐지는 걸까. 때론 포기하고 싶었다. ‘사람도 2~3일에 한 번 정돈 피자, 치킨, 햄버거처럼 몸에 안 좋은 음식 먹어도 말짱하잖아’라고 합리화를 하거나, ‘비가 와서 식욕이 떨어졌나’ 하고 날씨 탓을 하거나, ‘원래 밥 잘 안 넘어가는 날도 있는 거지 뭐’ 하고 쿨하게 넘기고 싶었다. ‘고집부리고 안 먹으면 쫄쫄 굶게 된단 걸 알려줘야 한다’며 1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밥그릇을 치우라는 엄격한 집사 사례도 읽었지만, 따라 하기 어려웠다. 리지가 힘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뭐라도 주게 되었으니까. 부드럽게 편식을 고칠 방법은 없는 걸까? 뭐가,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물음표의 숲 한가운데서 주저앉은 날이 많았다.


‘본투비 먹신’ 시절의 리지가 그리웠다. 그때 리지는 어떤 캔을 따든 자기 볼을 내 무릎에 비비며 좋다고 난리였다. 어쩌다가 참치에만 PASS를, 다른 식재료에는 다 FAIL을 주는 일편단심 편식냥이가 된 거니. 요즘 리지가 그나마 예외 없이 잘 먹는 것은 열빙어 트릿 뿐이다.



좋은 것을 먹이려는 집사와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는 고양이 간의 양보 없는 사투는 사실 찾아보니 흔한 사례였다. 나만해도 리지에게 뉴질랜드 초원에서 방목해서 키운 소의 고기로만 만들었다던 1급 유기농 캔을 주었다가, 리지가 토하자 캔을 처분했고, 유기농 음식만 먹이겠다는 욕심은 접어버렸다(사실 그때 문제가 유기농이었는지, 소고기 알레르기였는지, 적응 과정상의 스트레스였는지, 컨디션 난조였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런데 아무리 리지가 좋아해도 참치 편식만은 바꾸고 싶다. 중금속이라는 위협적인 단어는 그것 때문에 생긴 병을 진단받는 어두운 미래로 자꾸만 나를 훅 데려다 놓기 때문이다. 리지의 편식을 고쳐주려다 고치지 못한 내 성격상의 단점만 수없이 마주치게 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어떤 문제든 빨리 풀려는 조급함, 안 풀릴수록 마음을 가득 메워버리는 불안감.


우리는 요즘도 리지와 치열한 수싸움 중이다. 최근 남편과 손품을 팔아 성분이 괜찮은 한 외국 브랜드의 캔을 샀고, 오리&오리 간 캔에 거센 FAIL을 맞았지만, 칠면조&칠면조 간으로 새로 리지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캔을 땄는데, 고소한 냄새가 났다. 사냥놀이 후 쉬고 있던 리지도 밥그릇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은 징조였다. 유혹적인 냄새가 났다는 신호이기 때문. 티스푼으로 칠면조를 떠서 밥그릇에 올려놓은 후, 밥그릇 받침대 쪽으로 향하자 리지가 따라왔다. 리지는 곧 칠면조 고기 위를 몇 번 킁킁거리거니(좋아. 거의 다 왔어…) 혀를 내밀고 맛을 보았다(마지막 관문이다… 제발…) 난 칠면조 고기가 묻어있는 티스푼을 든 채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마침내 1시간 같은 1초가 흐른 뒤, 챱챱, 챠차찹. 리지는 기분 좋게 식사를 시작했다.


“여보!!! 칠면조 통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