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론은 듣고 싶은 과목 중의 하나였다. 부모라는 건 누구나 처음 겪어 보는 거고 수학공식처럼 어떠한 문제에 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깐 말이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선택 하에 정해지지 않는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건강한 자녀를 갖고 싶은 부모, 여유롭고 행복하고 자녀의 삶을 존중하는 부모를 갖고 싶은 자녀. 모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자녀도, 완벽한 부모도 없다. 우린 그저 이 세대를 이어가고 다음 세대를 물려주는 사회 구성원 중의 한 명이고, 가족 구성원의 한 명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직 어느 단추 하나 꿰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나중에 결혼을 해서 건강한 부모로의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줄뿐더러 부모의 어린 시절의 환경과 경험 등이 자녀를 키우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게 복 중 하나는 우리 엄마를 만난 거다. 엄마와 나는 친구 같기도 하고 소울 메이트 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새 삼십대 후반에 들어가면서 엄마의 잔소리를 견디기 힘들어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난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냐. 그만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할 때 되면 다 해, 내가 알아서 해.” 라고 말한다. 엄마는 습관처럼 하는 말이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의 시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표현해도 엄마에게는 상처일 수도 있었다.
아이도 성장기간이 있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니다. 살아온 경험의 시간, 마음들이 자리 잡고 이해하고 견디고 성숙해가면서 또 다른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환경을, 사람을, 나 자신을 이해하고 알게 되면서 매 해 다른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집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조그마한 거에도 서로 예민해지고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의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 부모교육론에서 배운 ‘나 전달법’을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나 전달법 이란 게 있대. 엄마가 내가 양치를 늦게 해서 싫으면 무조건 이빨 닦을 때까지 계속 얘기하는 것보다 내 행동에 대한 엄마의 감정과 느낌, 결과와 대안을 얘기 하는 거야.
예를 들면 1)“내가 이빨을 늦게 닦으니 엄마는 이가 썩을까봐 걱정되는 구나.” 2)“왜냐하면 엄마는 이빨 때문에 치과를 많이 다녀서 고생한 적이 있어.” 3)“그래서 네가 귀찮아도 이빨 닦는 건 밥 먹고 10분 안에는 했으면 좋겠어.” 이런 식의 순서대로 말이야. 그러면 내가 더 엄마의 마음을 알고, 나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으니까 엄마가 나를 걱정하고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무작정 지시만 하면 난 잔소리로만 생각이 드니까.
엄마는 말이 쉽지 그렇게 되냐고 하신다. 맞는 말이긴 하다. 이빨이나 잘 닦자. 엄마와 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며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