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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r 10. 2016

아빠들의 육아 수다 : 구관이 명관?

수줍음이 많은 나는 아직도 사람이 낯설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별로 없다.

(언젠가 한 지인에게 어린 딸과 함께 아직도 낯을 가린다는 말을 했더니, 그는 이불 킥하게 만드는 소리라며 웃었다. 나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의 나''나의 나'가 다르다고 느꼈기에.)    


회사와 집.

이렇게 단조로운 삶에서 가끔 여백을 느낄 수 있는 모임은 축복이다. 더욱이 휴직 중이라 집집을 오가는 생활하다 보니, 가끔 접하는 사회, 조직, 남자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치 활어가 된 듯 유쾌하다. 그래 봐야 수족관 안이겠지만.     


몇 안 되는 모임 중 하나가 첫째 아이 친구의 아빠들과 모임이다.

아이들은 총 5명으로 같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함께 초등학교에 다닌다. 올해 2학년인 아이들 중 2명은 같은 반이고 나머지 3명은 각기 다른 반이다. 2월에는 모두 같은 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다양하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면 더 좋겠지, 하며 마음을 고쳤다.

수줍다며 아직도 낯을 가리는 아빠가 주제넘게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참 많다.     




주말 오후.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킥보드 등을 갖고서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이니, 아빠들은 특별히 할 것이 없다. 가끔 괴물이 되어 함께 놀기도 하지만 이제 많이 커서인지 자기들만 모여서 노는 것이 더 편하고 즐거운 듯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이, 아빠들은 짧게 안부를 확인하고 수다를 풀어낸다.         


학기 초이어서 주제는 단연 담임선생님”!    

    

담임선생님 어떠세요?
우리 아이는 특별한 얘기가 없어요.
참, 1반에 첫날 좀 무섭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그러자 1반 아빠가 말한다.     


첫날 4교시가 끝날 무렵, 정문에 아이들이 많아서 아내가 우리 아이도 끝났을 텐데 왜 안 오지? 하며 궁금해서 아이에게 전화를 했대요.     


그런데 아이 목소리가 아니라 당황하는데,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전화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유 없이 학생은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하고는 전화를 끊으셨대요.     


처음엔 조금 당황했는데, 일부러 기선제압을 하려는 것 같았어요. 들어보니 어떤 반에는 아이를 울리기도 했다는데요.(‘한 아이가 울었다’란 표현이 사실에 가깝겠지만 학부모인지라)     


그리고 다른 이야기도 이어졌다.     


우리 반 선생님은 책 읽는 학생을 좋아한대요. 우리 아이는 책을 잘 안 읽는데.

참, 2반은 다른 학교에서 유명하셨던 분이 맡으셨다는데요.
좋지 않은 쪽이라 부모들이 많이 긴장하고 있다고.


사실, 아빠들과 처음 만날 때는 거대 담론을 나누고 자녀에게 일어나는 다툼이나 엇갈림은 흥분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 이해 못할 것이 없다는 식의 인자함이 가득한 대화가 주를 이룰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험담도 있고, 비난도 있는 아주 심하게(?) 인간적 모습이다.    




마침 얼마 전에 비난의 심리학적 정의가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한 기제라는 말을 듣고서 가슴에 콱 담았던 것이 기억났다.


아이와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푸념으로 이어지고 때론 빈약한 근거로 비난에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그중 사실은 아빠들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새로이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도 부모들도 선생님도 적응하느라 예민해진다.     


그 과정에서 혹여 오해가 생기기도 하여

구관이 명관이라 성급히 믿고 싶더라도    


지금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전이 더 좋았다며

조금은 여유 있게 서로를 바라보면 어떨까?        


1반 아빠는 휴대전화 소지를 위한 사유서를 학교에 제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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