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연재 Apr 27. 2022

아픔에는 이유와 때가 없다.

아파하는 청춘들에게

"아, 죄송합니다. 미팅 때문에 조금 늦었네요. 반갑습니다. AOO씨?"

"......(침묵)"

", 명연재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네며)

"......(침묵)"

"어~, 괜찮으세요?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침묵)"


인터뷰가 예정보다 10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다소 과도한(?) 반가움의 제스쳐와 말로 지원자를 맞이했다. 그런데, A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몇 번의 인사말에도 그는 침묵으로 반응했다.

'이 친구 일부러 이러나?' 뻘쭘했다.


A는 처음 만났다. 그런데, A의 이름이 눈에 익었다. 알고 보니 A는 여러 차례 입사 지원을 했던 사람이었고, 인터뷰 직전에 면접을 철회한 전력(?)이 있었다. 스마트폰의 일정표를 보니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 맞다. 그 친구지.'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면접 태도를 보인 지원자는 회사에서는 자체적으로 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진행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A는 우리 회사의 AI 솔루션 중 하나인 음성복제(voice cloning, 문장을 입력하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발화하는 기술) 관련 경험이 있었다. 공부도 그 분야로 했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다년간의 해당 분야의 실무 경험을 갖고 있었다.


회사 인사관리 원칙으로 말하면 실력보다 태도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에게 인재는 늘 목마르다. 혹시나 하는 궁금증에 원칙을 거스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어렵사리 내뱉은 A의 첫 문장은 이랬다.  

"제가 사실 아픕니다."

의외의 대답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지원자의 동작 하나, 숨소리 하나, 말 하나를 살펴야 하고, 나도 조심스럽게 최대한 배려하며 인터뷰를 이어가야 한다.  


깊은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를 어렵게 끌어 올리 듯 A는 지친 자신을 이끌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우물은 너무 깊고, 바가지에 담긴 물은 너무 무겁고, 세상 밖으로 연결된 우물 통로는 너무 험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처받은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인터뷰 결과를 사실 볼 것도 없다. 훌륭한 지식과 재주가 탐나지만 어느 경영자가 이런 지경의 사람에게 선뜻 손을 내밀 수 있겠는가? 그렇게 그날 인터뷰는 끝이 났다.


'아, 그래서 이 친구가, 의도한 것은 아니고, 몇 번이나 잡아 놓았던 인터뷰를 노쇼했던 거구나.'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픈 자신은 얼마나 힘들었으며 이런 인터뷰는 얼마나 부담이 되었겠는가? 그냥 자신의 몸뚱이로만 그저 있어도 힘든데, 먹고살기 위해 걸어 나와야 하는 괴로움은 굳이 더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대기업에 다니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아프게 되었고 지금은 몇 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초여름 자락의 나무 잎새는 연한 초록색을 띤다. 파릇파릇하고 앳된 잎새는 내리쬔 햇살이 온전히 자신의 몸을 통과하도록 허락한다. 나뭇잎 하나하나의 혈관이 다 드러난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아래 피어나는 투명한 초록의 생명력이 넘치는 청춘도 있지만, 아파서 남몰래 후미진 이면에서 머무는 청춘도 많다. 비단 L뿐이 아니다.


나도 아픈 적이 있었다. 남들은 강해 보여서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건 짐작이고 나는 나대로 아팠다. 숨겨서 그렇지 안 아픈 사람은 없다. 내가 아는 사실은 그렇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베란다에서 여명을 맞은 적도 있고,

자괴감에 두려움에 떨며 반(半) 공황상태가 되었던 적도 있고,

숨이 막히고 미친 듯이 땀이 흘러 혼절할 번한 적도 있고,  

분노의 치를 떨며 무력감에 휩싸인 적도 있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고,

다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려고 한 적도 있고,

...........,


아픔에는 이유도 때도 없었다.  


얼마 전 직원들과 치맥을 하는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요. 아마 예전에도 비슷하게 있었을 거예요. 요새는 좀 많이 자연스럽게 드러내잖아요. 그래서, 정신과 다니는 것도 그냥 이야기하고. 그래서 이래저래 아프다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시대와 상관없이) 인간의 삶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분량만큼의 기쁨과 슬픔이 있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더 많은 기쁨이 선사되었다면, 누군가는 더 많은 슬픔을 더 짊어져야 한다. 불평하고 울부짖어도 소용없다. 수천 년의 인간사가 분명히 말하는 사실이다. 신에게 묻지만 인간은 신의 심오한 의도를 깨달을 수 없다.


앤 헤서웨이(영화 레미제라블)


호호야,


이제 너희들의 키가 자라는 만큼 시련도 너희 인생 여정길을 함께 할 거야. 영어 관용어에 이런 표현이 있단다. It's a part of life's rich tapestry. 해석하면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 정도 될까 싶구나. 태피스트리가 뭐냐면 여러가지 색깔의 직물로 천을 짠 걸 말해(아래 이미지 참조).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감정, 저런 감정을 섞여 가다 보면 자기만의 태피스트리가 완성되는 거지.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말고 언제나 올 것은 오고 될 것은 된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살기 바래.   


Tapestry중의 하나


또 하나, 예기 불안(antixipatory anxiety)이라는 정신과 용어가 있어. 뭐냐면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갖고 사전에 염려하는 거야. 사람이라면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빠는 이 예기 불안이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 불안하니까 걱정을 하고 걱정을 하니까 불안해지고. 끝없는 악순환이지. 해 주고 싶은 말은 굳이 없는 걱정을 사서 하지 말라는 말이야. 대부분 그런 걱정은 쓸데 없거든.


살면서 안 아파할 수는 없겠지만, 아픔이 오면 자신의 태피스트리의 일부이겠거니 떠올리길 바라고, 일어나지 않은 아픔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 않기를 바래.




 


  





작가의 이전글 퇴사 생각? 맞춰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