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를 낳았을 때 나의 직업은 과외 교사였다. 수능 국어영역 과외 교사. 그때 남편은 박사 과정 중에 있었는데, 출산 후부터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6시에 집에 왔다. 6시까지 종일 아이를 돌보던 내가 6시 이후부터 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수업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를 봤는데, 초반에 아이는 먹으면 자는 게 일이었기에 아이는 아이방에, 남편은 부부방에 있으면서 아이의 울음소리에만 반응하면 되었다. 몇 달이 지난 뒤에도 귀가한 남편이 씻고 저녁을 먹고 하다 보면 아이는 밤잠이 들고 그대로 통잠을 자기 일쑤였다. 역시나 남편은 아이가 깰 때만 아이방으로 건너가면 되었다.
문제는 아이가 엄마인 내 얼굴을 알아보면서 생겼다. 특히 내가 방문 수업을 하는 날에 남편은 진을 빼야 했다. 내가 수업을 하러 학생의 집으로 간 뒤에 아이가 잠에서 깨면 아이는 나를 찾느라고 울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나는 남편의 폰에 내 얼굴을 대고 자장가를 불러 녹화해 두었다. 그걸 남편은 우는 아이의 눈앞에 갖다 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치고 영상 속의 나를 뚫어지게 보더라고 남편이 전해주곤 하였다. 그런데 영상의 약발이 슬슬 떨어지던 어느 날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고 남편은 초보 아빠인 만큼 아이가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과 고주파로 계속 빽빽 울어대는 소음 때문에 결국엔 아이의 이불을 낚아채서 방바닥에 거칠게 패대기를 쳤다. 마침 딱 그때 내가 집에 들어선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나는 껄떡 껄떡대며 울고 있는 9개월이 된 아이한텐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남편한테로 가서 남편을 안아줬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얘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 중인 남편이었기에 잦은 실험을 하곤 했는데, 저녁 이후엔 시간을 낼 수 없으니 할 수 없이 새벽 시간을 이용했다. 새벽 4시에 집에서 나가서 해가 뜨기 전의 식물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교수님을 도와 연구를 하고 간간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종일 바쁘게 보내다가 6시면 어김없이 퇴근한 남편은 내가 수업을 하러 수업방에 들어가면 아이를 씻기고 젖병을 세척하고 아이가 깨면 다시 재우면서 내가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가 다시 잠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되면 남편은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는데 아이의 방과 내 수업방에 영화 소리가 들릴까 봐 이어폰을 꽂고 보곤 했다. 그럴 때는 아이가 깨서 우는 소리를 남편이 잘 듣지 못해서 수업을 하던 내가 알려줘야 했다. 그러면 남편은 미안해하며 얼른 아이에게 갔다.
이런 남편이었기에 울고 있는 아이로 인해 견디다 못한 마음을 아이의 이불을 내팽개치는 걸로 풀고 있던 남편에게 나는 순수한 동지애, 전우애를 느꼈던 것이다. 수개월 동안 내가 그러고 싶을 때가 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하든 못하든 육아의 책임을 나와 같이 지려고 아등바등하는 남편이 고마웠다. 남편과 내가 육아에 들이는 시간이 3:7로 차이가 났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나 홀로 집에서 아이를 봤어도, 이유식을 내가 만들고 남편은 한 번을 만든 적이 없어도, 대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오직 육아에만 전념하는 남편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배우자라는 확신이 확고해졌다.
근 두 달여 동안 10살인 작은 아이에게 턱교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네 군데의 치과를 더 찾아가 봤다. 새로운 치과에 다녀올 때마다 남편에게 상황을 얘기하면 남편은 어서 교정을 시작하자고 했다. 방법도 기구도 제각각인 여러 치과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이한테 어떤 방법이 덜 힘들지 때마다 고민이 되었다. 한 곳만 더 가보고 결정하겠다는 내게 남편은 흥분한 상태로
"애 교정 빨리 시켜 줘. 돈 때문에 그래?"
라고 했다. 순간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돈 때문이냐고? 그렇지, 돈도 중요한 이유지. 교정비가 저렴한 곳과 비싼 곳이 꽤 많이 차이나던데, 그러면 돈도 중요하게 고려해 봐야지.
그런데 돈보다도 두 달 남짓 아이의 턱교정 때문에 고민되던 내 마음을 돈 때문에 안 시키는 거냐며 무참히 밟아버리다니. 그게 너무 속상했다. 그 병원에서는 어떤 방법을 쓴대? 기간은 얼마나 걸린대? 이런 걸 얘기하고 싶었다. 내게 가격이나 물어보고 돈 때문이냐고 했다면 좀 덜 억울했겠다. 아니, 더 화가 났을까?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이들에 대한 사항을 일거수일투족 공유하느라 대화가 많았던 우리 부부 사이가 안 그래도 주말 외엔 대화할 시간도 없는데, 아이들이 초등학생으로 자라고나니 남편과 일일이 공유할 일도 적어졌다. 이런 이유로 동지와 전우의 관계에서 틀어져도 한참을 틀어졌다. 동지애? 전우애?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아이가 아가일 때 부부 둘이서 아이를 같이 키우며 끈끈했던 한 팀이라는 느낌. 아내인 내가 요즘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에 대한 관심, 두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성장하고 있는지, 아내와 아이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남편이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일일이 우리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금은 그렇게 할 때 한 팀이라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남편이 매일 집에서 출퇴근을 하지만 평일에는 바빠서 주말에나 대화하게 되는데 그렇다는 건 실상은 우리의 가정 안으로 남편이 들어오는 게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인 셈이라는 거다. 우리 가족의 풍족한 삶을 위해 남편이 하루 종일, 토요일도 바쁘게 사는 걸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덕에 먹을 거, 입을 게 아쉽지 않게 되었다. 남편 덕분임에 마음껏 뿌듯해할 자격이 남편에게 충분하다.
한 가지 기억해 줬으면 하는 건 식구들이 하는 고민을 남편도 같이 고민해 달라는 것, 식구들의 얘기를 끝까지 듣다 보면 식구들이 뭘 고민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것,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의 삶 속으로 들어올 땐 빠른 해결책을 제시하려기보다 식구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게 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돈 때문에 그러냐는 성급한 해결책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남편은 나와 아이들의 관심을 얼마나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나의 전우애가 식은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