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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라봉 Sep 03. 2019

해외공항에서 내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여행 중 강렬하게 느낀 욕구


자그레브 한달살기를 하며 도중에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구성했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을 하고 있는데도 또 다른 여행 기대되는 신기한 마음. 공항버스 안에서 두근거리는 마음 두브로브니크 맛집을 찾 도착하면 무엇부터 할지 일정을 짰지만, 채 시작하기도 전에 계획은 어그러졌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사전 알림 메일도 없이, 문자도 없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또 예상치 못하게, 취소된 그 비행기를 타고 결국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까...?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크로아티아 항공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탔다. 막혔지만 공항이 붐비지 않아 체크인부터 짐 검사까지 빠르게 끝났고, 어느새 게이트 앞 의자에대기하고 있었다. 시간 여유가 충분해서 오늘 참 순조롭네,라고 생각했다. 남는 시간에는 맥주까지 사 먹었다.


비행기 탑승 시각은 10시 5분.

책을 읽으며 기다리다 문득 전광판을 보니 30분 지연으로 딜레이 문구가 떠있었다. 조금 늦어지나 보다, 싶을 뿐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이 없었다.


10시 35분, 시간이 되었지만 탑승 알림이 없었다. 탑승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도 대기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크로아티아 항공 승무원들이 바빠 보였다. 딜레이 문구도 뜨지 않았고, 탑승시각은 10시 35분으로 동일한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마음이 불안해졌다. 혹시 이 게이트가 아닌가? 게이트가 그 사이에 바뀌었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광판을 들여다봤지만 다른 게이트에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부터 의자에 앉바쁘게 전화하는 항공 승무원들을 주시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11시 15분, We have a big problem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방송은 아니었고, 승무원이 데스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그 앞에 가서 '영어듣기'를 시작했다. 최대한 귀를 쫑긋 세웠으나 영어를 완벽하게 듣지 못해 조금 어리둥절했다.

단어로 유추해보니 '두브로니크 공항에 문제가 있어서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방법을 알아보겠다.'라는 말이었다.


대기실은 소란으로 가득 찼다. 알아듣지 못하는 유럽어가 난무했다. 그 사이 종종 들리는, 그나마 들을 수 있는 영어 듣기 위해 쭈구리처럼 서서 소리에 집중했다. 학생 때 영어듣기평가를 할 때도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무원은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비행기는 캔슬된 상태며, 다른 시간대의 비행기 좌석을 알아보고 연결해주겠다."


상황이 이러니 두브로브니크 도착 시간이 불투명해 보여 우선 두브로브니크 숙소 호스트에게 연락했다.

  - 발이 지연돼서 언제 도착할지 모르겠네요. 도착하면 연락하겠습니다.


두브로브니크 숙소 호스트에게 보낸 메세지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인들이 점차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우리도 그 사이로 갔다. 모두 낯선 사람이었지만, 타지에서 만난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게 친근해졌다. 각자 이해한 상황과 들은 내용을 공유했다. 설핏 웃음이 나왔다. 연세가 지긋하신데도 혼자 여행을 다니는 할머니와 노부부를 보 멋진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직접 승무원에게 가서 영어로 질문을 하고, 답을 듣는 모습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내 마음은 살짝 복잡했다. 토익 800점을 넘기고 영어회화 성적도 매년 갱신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 입은 열리지 못했다. 겨우 알아듣고 있을 뿐.


그나마 다른 이유로 마음 한쪽이 편했다. 한달살기 여행 이니 자그레브에는 여전히 돌아갈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여기서 30분만 가면 당장 드러누울 침대가 있다는 사실이 한결 여유를 주었다. 떼먹지는 않겠지, 다른 항공편을 알려주던가 배상하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정 안되면 자그레브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흘러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11시 20분경, 승무원은 '탑승자의  Priority, 우선순위가 높은 순서부터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여유 좌석 티켓을 주겠다'라고 다. 제일 먼저 호명된 사람이 새로운 탑승권을 받자, 사람들은 그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진 거냐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우선순위 리스트자동적으로 뽑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우리와 함께 있던 노부부는, 아마도 항공사 멤버십  등급이나 비즈니스 좌석을 구매한 사람이 높은 우선순위일 거라고 말했다.


승무원은 데스크에 서서 추가로  사람의 이름을 더 호명했고, 새로운 탑승권을 들고 그들은 미련 없이 떠났다. 그 속에 한국인이 제일 많아서 놀랐다. 영어가 유창한 노부부도 곧 탑승권을 받고 떠났다.


영원히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내 이름을 기다리며 과자나 꺼내 와구와구 먹었다. 이 공항, 이 해외에서 나의 등급은 몇 번째쯤 까. 얼마나 끝자락에 있을까, 자문하며.

승무원은 계속되는 항의에 조금 지쳐 보였지만 오늘 안에는 모두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을 다독였다. 근처에 앉아 알 수 없는 나의 등급을 계속 궁금해하며, 그저 이름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구름이 유난히 반가웠다


이런 소란스러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두 가지였다.


  1. 저기서 오가는 크로아티아어를 알아듣고 싶다.

      (사실 크로아티아어가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언어인지도 잘 모르겠다)

  2. 영어로 나도 질문하고 싶다.


상황을 잘 알고 싶었다. 원활하게 듣고 싶었다. 알아듣지 못한 문장에 다른 정보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가만히 지켜볼수록 영어 대한 열망이 피어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언어가 방향으로 통하지 않으니 어떤 대책이 나와도 알아들을 수 있으려나 싶었다. 그만큼 답답했고, 무지한 백성이 된 느낌이 있었다.


어느덧 12시. 승무원이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비행기가 다시 온다고 합니다. 12시 45분에 탑승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캔슬된 비행기가 전광판에 다시 표시됐다. 그 비행기는 한 번 더 지연되어 오후 1시 넘어 탑승했지만 그저 더 지연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캔슬된 비행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말을 한 후, 크로아티아 항공에서는 리프레쉬 쿠폰 하나씩 주었다.(40쿠나, 한화 약 8,000원) 쿠폰을 들고 바로 근처에 있는 매점에 가서 초콜릿과 맥주를 사 먹었다.

우리 등급은 빠른 보딩패스 대신 리프레쉬 쿠폰을 받는 등급일지도 모른다고, 오후 2시 에 비행기를 타는 게 우리 등급이라면 내 생각보단 높은 등급이라고, 남편과 낄낄거리며 웃었다.


탑승권을 받고 먼저 간 사람들의 수화물은 그들을 잘 따라갔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비행기를 무사히  수 있었다. 3시간의 기다림일 뿐이었지만 두브로브니크를 도착했을 때는 마치 하루가 지난 느낌이었다.


상황이 확실하지 않았던 10시 5분부터 12시까지 2시간 남짓.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나의 부족함. 영어공부를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들. 앞으로도 이 느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기억을 계기삼아,  탑승 우선권을 받고 영어가 유창했던 그 노부부처럼, 나 또한 후에 멋진 '중년'을 보낼 수 있기를. 리고 더 근사한 '노년'을 보내기를. 다운받은 기초회화 단어장을 소리 내 말해보며 꿈꾸어 본다.




프라하 한달살기 + 크로아티아 한달살기 = 총 두 달의 한달살기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표현하였습니다.

* '한달살기'를 명사처럼 쓰고 있습니다.


영어 잘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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