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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라봉 Sep 06. 2019

살아보며 느낀 한달살기 여행의 매력을 꼽자면

한달살기 여행의 6가지 장점


한달살기 여행의 매력은 셀 수 없 많지만, 장 먼저 뽑을 수 있는 장점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여행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한 달 안 남편과 나의 여행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게으른 하루를 보내고 있어도 여행은 흘러간다.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라, 아무것도 안 해도 굼벵이 같아 보이지 않아서 좋.  일상과 함께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한달살기 여행의 매력은 아래와 같다.


1. '그곳에 가면 꼭 해야 할 것'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디를 가면 꼭 보거나, 꼭 먹어 리스트가 있기 마련이다. 한달살기 여행을 하면서 한 곳에 오래 있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압박이 없다.

예를 들 이런 것들이다.

 - 인기 있는 장소가 붐비거나 만석일 때 쿨하게 돌아설 수 있다. 내일 덜 붐비는 시간에 와야지, 는 생각으로.

 - 꼭 먹어봐야 할 요리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짧게 여행을 왔다면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나 그 도시의 전통요리를 주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한달살기 동안 기회가 많으므로 '꼭 먹어봐야 할 것 같은 요리'를 굳이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2. 여행에 끌려가 않고, 좋아하는 것들로 여행을 채울 수 있다. 

프라하에 가면 꼴레뇨를 꼭 먹고 야경을 봐야 하고 맥주를 꼭 먹어야 하고... 꼭 해야 한다는 리스트를 충분히 하고도 시간은 남는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일정으로 여행을 채울 수 있었다. 전망 좋은 공원을 찾아 피크닉 하기. 전동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리기. 여행자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지인에게 유난히 인기 좋은 곳 가보기. 독특한 시장 찾아가기.

마음에 드는 곳 두 번가기 세 번가기 네 번가기.

벼룩시장과 파머스마켓을 셀 수 없이 다녀왔다.

3. 날씨의 영향이 크지 않다.

과하게 더운 날은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을 '비가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하지 않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즐긴다. 테라스 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즐기다 보면 이게 정말 여유고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오는 자그레브 거리


4. 만의 여행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한달살기 여행을 하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후기가 좋지 않더라도 가고 싶은 곳주저하지 않고 방문한다. 시간적인 여유로움 '갈까, 말까'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은 남들이 '그 돈을 주고 갈만하지는 않다.' 또는 '별로였다'라고 해도 나에게는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은 다를 수밖에 없고, '아 나는 이걸 하기 위해 여기를 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도 다를 것이다.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스르지산 전망대 실망스럽다고 하는 평들이 많았지만, 남편과 나는 그곳을 행복하게 기억다. 전망 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전망을 보며 맥주 한 잔, 커피 한 잔 하며 여유 부리는 것 좋았다. 전망만 기대했다면  순간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남는 않았을 것이다.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촉박하지 않게 즐기는 여행을 좋아한다.

남들은 다 맛집이라고 는데 내게맛집이 아니었던 적 다들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여행을 할 때는 무조건 맛집만 찾았다. 먼 곳까지 놀러 와서 먹는 몇 안 되는 끼니를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한달살기 여행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맛있다/맛없다고 평가한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별점을 주 것도 여행의 묘미라는 걸 알았다. 음식의 맛 자체 보다, 직접 판단해보는 거움 알게 되었다. 결국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던, 내가 느끼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다.


5. 더 알게 될수록 오래 볼수록 설렌다.

오래 보고 더 잘 알게  애정을 갖게 되는 종류들이 있다. 크로아티아 한달살기를 하 더 자주 들여다보고 관찰할수록 설렜다. 좋아졌다. 처음 프라하 한살기를 마치고 크로아티아 한달살기를 이어서 했을 때 프라하의 매력에 빠져있는 상태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프라하 한달살기의 여운에 크로아티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도시만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즐기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도시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들여다보니 애정이 듬뿍 다. 그런 과정에서 나만 아는 즐거움이 생긴 건 당연하다.


6. 순위 욕구, 장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자연스러운 시간들이 많아졌다. 가만히 앉아 생각할 시간이 넘쳐서, 이전에넘기던 것들도 시간 들여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욕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게는 '화장하기'가 그런 것이다. 화장하고 꾸미는 걸 귀찮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화장도 꼬박 하고 액세서리도 챙긴다. 꾸미는 시간 자체가 즐거워졌다. 그럴까, 생각하다가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는 IT 영어공부에 집중하는 것, 출퇴근 자체와 더 자는 것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화장하고 꾸미는 욕구를 접어두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그렇기에 이곳에 와서 화장의 즐거움을 알게 되긴 했지만, 나중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면 또 다시 꾸미기가 후순위로 밀릴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극적인 변화 일으키진 않아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거나, 이전보다 더 귀 기울이기.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있는 또 다른 열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행 동안 찍은 사진, 검색 내역을 고요히 바라보면 무얼 좋아하는지 더 또렷하게 와 닿다. '인생에 한 번쯤은 한달살기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이 여행을 하고 있지만, 행이 끝나 남편과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것이다. 그것이 다른 종류의 여행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돈은 늘 넉넉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권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 잠시 멈춰도,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나아가고 있을 테니까.




프라하 한달살기 + 크로아티아 한달살기 = 총 두 달의 한달살기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표현하였습니다

 * '한달살기'를 명사처럼 쓰고 있습니다.


사실 한달살기의 진짜 매력은 <일상의 근심이 없는 곳에서 할 일>편에서 쓴 것처럼 그 특유의 해방감이에요. (클릭하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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