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너머, 낯선 풍경 #8

기차는 계속 달린다

by Gnoy

2017년 07월 30일, 일요일 | 횡단열차 4일째


이별

눈을 뜨자마자 정적이 느껴졌다. 새벽녘 기차는 이르쿠츠쿠역에 도착했다. 이르쿠츠쿠를 전후로 많은 이들이 내렸다. 첫날부터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한국 청년 두 명이 내렸고, 러시아 영어 선생님인 다샤 엄마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래서인 객실은 조용했다.

고작 며칠 함께한 사람들이었는데도, 이별이 선명하게 와닿는다. 손을 흔들 시간도 없이 사라진 뒷모습. 객실 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플랫폼의 풍경. 마치 작은 세계가 해체되는 느낌이었다.

이르쿠츠쿠에서

침묵

사람이 떠난 공간에는 공기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전엔 다샤 가족이 사용했던, 빈 테이블에서 사진을 정리했다. 객실이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창밖, 조용한 객실, 조용한 나.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기차는 계속 나아갔지만, 나는 정체된 듯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변화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모스크바와의 시차가 4시간으로 줄어 있었다.


소음

조용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승객들이 객실을 채웠고, 여기저기 말소리가 번졌다. 그중 가장 큰 소리는 러시아인들의 말싸움이었다. 언어는 알 수 없어도 분위기는 확실히 느껴졌다. 감정이 날카롭게 튀었고, 손짓이 거칠었다. 그들의 싸움 소리가 피곤 속 자장가로 들렸다. 그러나 잠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쯤 지나고 있을까. 지금이 몇 시쯤일까. 하지만 기차에서는 그런 게 무슨 의미일까.

이르쿠츠쿠를 지나고 탑승한 유리아

시간의 의미

시계를 본다 한들 소용이 없다. 시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단순한 리듬이 몸에 새겨졌다. 창밖 풍경이 변해도, 기차는 같은 속도로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점점 흐려진다. 그저 기차가 가는 만큼, 내가 가고 있다.


오늘은 너무 많은 것이 흘러갔다. 사람들의 이별, 새로운 얼굴들, 말다툼, 나른함. 하지만 결국 기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냥 흘러간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하루를 하루처럼 살기로 했다. 그냥 흘려보내보기로 했다.

낮잠을 자는 사람
疲れた、寝よう

피곤해, 자자.


기차가 가는 만큼, 나도 흘러간다.


당신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을 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서쪽으로 갈수록 해가 길어지며, 시간이 구분되지 않는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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