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너머, 낯선 풍경 #9

여정의 전환

by Gnoy

2017년 07월 31일, 월요일 | 횡단열차 5일째


인연의 변화

이르쿠츠쿠를 지나며 객실 속 인파의 변화가 물살처럼 밀려왔다. 어떤 이는 하루, 어떤 이는 하루 반, 또 어떤 이는 한 정거장 후에 떠났다. 머물던 자리마다 흔적이 남았고, 그 빈자리는 금세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이별은 점점 더 짧아지고,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안드레이 아저씨가 내리는 역에 도착했을 때는 가슴 한편이 허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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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아저씨는 짐을 챙겨, 가족 곁으로
안드레 아저씨는 첫날 내 침대 아래에 테이블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침엔 침상을 테이블로 만들어 나와 함께 공유했고, 잠을 잘 땐 다시 침상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의 의자를 밟고 침대로 올라가기도 하고 침상을 밟고 오르기도 했다. 5일을 반복했고, 함께 웃었다. 아저씨가 먹는 음식들이 궁금해 물어보기도 했고, 내가 먹는 음식을 궁금하게 생각해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열차를 탈 때 필참해야 할 홍차를 몰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자신이 가진 홍차를 나눠주셨다. 많은 도움을 받고,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해바라기 씨가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테이블에서 해바라기 씨를 먹다 보면 껍데기가 수북이 쌓이는 광경을 보기 일수였다. 안드레이 아저씨 덕분에 재미있었고, 편안했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작별의 미소

같이 내려 인사를 나누려 했지만, 손자를 품에 안은 그의 모습이 너무나 따뜻해 차마 방해할 수 없었다. 대신, 그 순간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짧은 인연이었지만 정들었던 시간이 빠르게 되감기는 듯했다.

그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질 때,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조용히 떠나갔다.

DSC06747.jpg 진라면을 한입 먹는 아이


시간의 흐름

모스크바까지 하루 반나절이 남았다. 시차는 어느새 2시간 차이로 좁혀졌고, 기나긴 여정의 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었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이별과 시작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기차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여행의 끝에서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불안과 기대

러시아와 북유럽을 벗어나면 소매치기와의 전쟁이 시작될 거라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무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불안과 함께 도전의 불꽃도 피어오른다. 어차피 길 위에 서 있는 한,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할 뿐이다. 지나온 인연이 그러했듯, 앞으로 다가올 인연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다시 익숙해지겠지.


만남과 희망

오후 다섯 시, 옴스크 역에서 많은 이들이 내렸다. 빈자리가 채워지듯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섰고, 객실은 다시 활기로 가득 찼다. 이틀 만에 만난 한국인과 식당칸에서 밥을 나누었다. 고작 이틀인데, 오랜만에 익숙한 언어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주 한 잔 없이도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 이게 동향인을 만난 느낌일까. 낯선 길 위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 쉽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문득 드는 생각. 이도 결국 작별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 즐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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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스크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
旅行を楽しもう。
여행을 즐기자.

이별을 아쉬워하지 말고, 만남을 망설이지 말자. 오늘 하루는 고요한 파도처럼 밀려가고 밀려와, 마음속 어딘가에 은은한 거품을 남겼다.


짧았던 만남 속에서, 또는 잔잔한 이별의 순간 속에서,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지나간 인연들이 남긴 잔향은 무엇이며, 그 여운이 당신에게 또 다른 만남의 용기를 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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