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엄마 편..
아침부터 우리 앵두의 질투가 도를 넘어섰다.
사건의 발단은 고서방이 밥솥을 닦을 때 눌러붙은 밥풀을 철 수세미로 혼신의 힘을 다해 긁어 닦으면서 압력솥 바닥의 코팅이 몽땅 벗겨진 터라 오래 써오기도 해서 아예 압력솥 자체를 바꿔 버렸는데 그 솥에 처음 밥을 하게 된 사람이 또 하필이면 더 배고파서 약자인 고서방이었다.
새로운 밥솥에 셋팅된 낮선 여자의 목소리는 참으로 봄날 한들거리는 꽃잎처럼 상냥하고 전의 여자보다 십 년쯤은 더 젊었다. 그래선가? 왠지 밥도 더 고실하게 잘할 것 같고..
하지만 문제는 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아빠랑 둘이서만 엄마 몰래 깨를 한말쯤 볶아대며 알콩달콩 했다는 거지.
오랫만의 휴가로 여유롭게 리모컨 장착하고 쇼파에 누워있는 엄마한테 달려와서는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누워서 '아침마당'이나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일러바치느라 난리가 나고, 다시 아빠가 있는 주방으로 달려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네가 오늘날 죽을라고 환장했냐며 아빠 파자마를 물어당기고 아파트가 떠나가게 깡깡 짖어댔다.
앵두한테 엄마는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그러니 진정하라고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엄마는 웃음이 나오냐며 어찌나 난리 꽹과리를 치던지 덩달아 막둥이 연두와 콩지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가 일어나 주방으로 출동해야만 했다.
과장해서 밥솥 뚜껑을 두어 번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따찌따찌를 했다.
급기야 취소 버튼을 눌러 취사를 멈추었다. 그렇게 그 젊고 예쁜 목소리의 여자를 완전히 무찌르고 나서야 오늘의 소란은 일단락 되었다. 참으로 요란한 밥솥 신고식이었다.
어쩌나.. 익숙한 동거녀는 이미 어제 분리수거 하느라 미련없이 밖으로 내쫓아 버렸으니.. 그럼 밥은 누가 할까? 할 수 없네, 식빵이나 구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