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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Nov 10. 2019

먼지다듬이를 아십니까

오스트리아도 자본주의 국가였다



먼지다듬이라는 벌레가 있다. 크기는 아주 작고, 색깔은 연회색 정도라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일명 ‘책벌레’라 불리기도 하는데, 오래된 책을 열었을 때 틈새에 나타나는 벌레이다. 요즘은 새 아파트 등에 많이 나타나 문제되고 있다고 한다.



이 벌레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2017년 9월이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서 오스트리아에 파견되었다. 버디의 친구가 역에서 나를 픽업해서 기숙사에 데려다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케아에 쇼핑을 하러 갔다. 저녁 식사까지 마친 후 방으로 돌아왔고 가방을 정리하려고 책상으로 갔는데,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아주 작은 벌레들이 창틀과 책상에 기어다니고 있었다.
벌레를 극혐하는 나는(모기나 개미도 맨손으로 못 잡는 사람이다), 순간 당황했고 버디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유럽에… 흰개미가 있니?’ 하고. 걔는 기숙사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반응이었다.
초록색 지식창고인 네이버를 조금 뒤진 후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벌레는 먼지다듬이라는 것을…

먼지다듬이는 습기를 먹고 사는 벌레라서 퇴치가 어렵다고 한다. 얼마나 퇴치가 어려운지 네이버에는 ‘먼지다듬이 카페’가 존재한다…

바선생 카페, 개미 카페는 본 적이 없는데 먼지다듬이 카페라니. 이것들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존재인지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바로 이 카페에 가입했다.

먼지다듬이가 책상과 창틀에만 나오면 어떻게든 버텨보겠는데, 이 망할 벌레들은 침대와 침대 옆 협탁에도 기어다녔다. 정말 너무 싫었다. 어떻게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첫 날, 벌레들이 방에 나타날 수가 있지?


플랫메이트에게도 말했는데, 자기 방에는 벌레가 없지만 건너편 방에 벌레가 나온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이 벌레들이 옷에 못 붙도록 모든 짐을 다시 싸 뒀다.



캐리어에 안 들어가는 짐은 타포린백과 압축백에 담았다.

그 다음 내가 한 일은 기숙사 매니저에게 리포트를 쓰는 것이었다. 매니저는 살충제를 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살충제를 뿌린 후 먼지다듬이는 더 출몰하기 시작했다…


근무시간도 짧아 만나기 어려운 기숙사 매니저. 근무는 주 3일 정도인 것 같다. 몇 번이나 사무실에 찾아가 겨우 만난 매니저에게 또다시 리포트했지만, 약을 더 쳐주겠다고 할 뿐이었다. 매니저는 내가 찍어 둔 벌레 사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남는 방은 없으니 방을 바꿔줄 수 없다고 했다.

나한테만 찬바람이 쌩쌩 불었던 그녀…

엄마는 ‘유럽 애들은 너처럼 벌레로 호들갑 안 떤다’며 나를 탓했다. 나는 며칠 동안 침대의 끄트머리에서 울면서 잤다. 불 켜놓고.



리빙박스에 짐 넣기. 플메가 거실에 놔둬도 된다고 배려해줬다.

이케아에 또 가서 리빙박스를 4개나 샀다. 벌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플라스틱 박스에 짐을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케아가 진짜 멀어서 버스도 2번이나 타야 하는데, 배차간격마저 지옥이어서 1시간이나 기다렸다. 짐도 무겁고, 뭔가 서러워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창문보고 눈물 흘렸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가 의식주인데 ‘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정말 힘들었다. 벌레가 더 심각하게 나온 새벽…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다. 그 날 기숙사 오피스는 휴무여서 매니저한테 얘기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매니저는 방을 절대 안 바꿔줄 것 같으니 다른 오피스를 찾아봤다.

런던으로 여행가는 날 아침, 하우징 오피스가 열었길래 가서 물어봤다. 방에 벌레 나오는데 약 쳐도 계속 나온다고. 한국 가고 싶은데 보증금 돌려주냐고.
그랬더니 남는 방이 없다고, 자꾸 솔루션을 찾아보겠단다. 그래서 이 벌레는 습기를 먹고 살아서 퇴치가 어렵고 어쩌고 설명하고, ‘방 안 바꿔주면 한국 갈래’를 어필했더니 벌레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사진을 본 후 갑자기 매니저와 통화를 하더니 방을 바꿔준단다.


남는 방… 없다며…?

아마 이 날이 내가 영어로 의사표현을 가장 '많이 정확히 빠르게' 한 날이었을 거다. 어쨌든 중앙역 가는 버스 타기 1시간 반 전, 급하게 이사를 하고 청소하고 뛰쳐나갔다. 짐이 전부 리빙박스와 캐리어에 담겨져 있으니 이사하기 편했다.



떠나는 날 아침, 340a호

새로 이사한 방은 전 방이랑 같은 라인이었는데 2층 위였고, 꼭대기 층이라 훨씬 밝고 깨끗해보였다. 그리고 다른 층에 비해 방 개수가 적어서 훨씬 조용했다.


새 방에서는 먼지다듬이가 등장하지 않았고(실버피쉬는 2번 출몰했다), 5달간 잘 지냈다! 하우징 오피스 직원은 지나가다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방은 깨끗한지 물어봐줬다. 완전 맘에 든다고 웃어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 빼겠다고 한 것이 강수였던 것 같다. 역시 오스트리아도 자본주의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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