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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k Jul 12. 2023

7월 12일

언제나 생일, 언제나 선물 같은

달빛을 먹고 자라는 꽃

오늘은 7월 12일

생일 하루 전날이다. 생일을 하루 앞당겨 축하하기 위해 연차를 내고, 늦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명상을 아주 오래 했다. 평소와 다르게 아주 고요하게 몸에 구애받지 않고, 평온을 유지했다. 덤덤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비도 오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쏟아지는 폭우는 딱 하루 오늘, 맑은 날로 찾아왔다. 아껴뒀던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뽀송함을 유지하기 위해 걷다가 무심코 찾아본 지하철 시간표에는 곧 열차가 도착함을 알렸다. 후다닥 뛰어갔지만 눈앞에서 열차가 떠나가 버렸다. 땀이 나기 시작했지만 괜찮았다. 덤덤히 기다리면 열차는 또 오겠지. 짜증이 올라왔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집을 일찍 나선 남자친구는 케이크를 픽업하고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여유롭게 도착한 나는 그를 기다리기 위해 마사지샵에 갔지만 그도 마침 나오려던 참이었다.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시간에 맞춘 것은 앞서 열차를 놓쳤기 때문에 일어난 완벽한 일이었다.


색감 장인


카페에 들렀다가, 전시를 보러 갔다. 평소 전시를 좋아하는 우리는 기대하며 라울 뒤피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훌륭한 그림이었지만 나무위키에서나 볼법한 주최 측의 해석에 살짝 실망하려던 찰나, 섹션을 거듭할수록 도전적인 행보를 보이던 그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업적 미술을 꺼려했던 그는 오히려 상업적 미술에서 완벽성과 창의성을 발휘했고, 그 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해 내었다.


평일이라 한가한 전시회장에 오늘은 왠지 한 아이의 소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의 소음소리는 라울 뒤피의 상업적 예술 섹션에서, 전기의 요정에 나오는 작품과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에 우리의 전시 경험을 더 즐겁고 재미있게 해 주었다. 처음에 실망했던 나무위키 식의 전시 해설은 오히려 우리에게 라울 뒤피의 사상과 철학을 탐닉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한층 더 그의 성격을, 그의 생각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완벽한 일이 되었다.


가리비 관자구이와 감자는 아주 맛났다


배가 고파진 우린,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늦을 것 같아 사전 연락을 하던 도중 좋지 않은 사장님의 냉담한 반응에 예약을 취소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부정의 늪으로 빠지진 않았다. 당일 예약이 가능한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창가자리, 케이크도 불 수 있는 조용하고 부담 없는 레스토랑. 차례대로 나온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마지막 메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인요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여쭤봤지만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었고, 2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고민하다 결국 메뉴를 변경했다. 메인 메뉴를 위해 와인과 케이크를 남겨두었지만, 이 상황 그대로도 즐기기로 했다. 살짝의 배고픔과 아쉬움은 잠깐 뒤로하고 케이크와 와인 그리고 마지막 요리를 즐겼다. 사장님은 마지막 주문을 듣지 못했다며 계산 시, 할인을 해주셨고 예상치 못한 선물에 우리는 모든 게 완벽했구나를 깨달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집에 오는 길, 하루종일 맑았던 하늘에 조금씩 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집으로 향하고 씻고 있을 때쯤이면 다시 폭우가 시작되어 있을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돌아오며 나는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니었을까, 명상으로 인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다가와 준 것은 아닐까, 우연이 겹치더라도 모든 우연리 겹겹이 쌓여 나의 하루를 선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7월 12일은 또 다른 나의 생일이 아닐까, 아니 매일이 나에겐 선물 같은 하루가 펼쳐지지 않을까. 어떤 우연이 나에게 일어날까, 어느 하나 잘못된 사실도,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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