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요가 그리고 서핑에서 배운 것들
지난주, 주짓수에서 알게 된 친구를 오랜만에 밖에서 만나게 되었다. 세쥬는 포르투갈에서 온 AI 전문가라 개발자인 남자친구와 친해지게 되었고 덕분에 나도 세주와 친해져 주짓수에서 항상 안부를 묻던 사이가 되었다. 밖에서 따로 약속을 잡은 우리는 오랜만에 근황이야기를 시작으로 친한 친구보다 어쩌면 더 깊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나와 남자친구로 부터 시작된 화두였는데, 주짓수와 요가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할뿐더러 마음 상태에 따라 운동도 다르게 해줘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회사 다닐 때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고, 지루한 감정, 스트레스 등이 쌓이다 보니 주짓수가 간절하게 하고 싶었다. 생존적 본능을 느끼며 아무 생각도 없이, 그날 하루의 스트레스와 지루함을 떨쳐버리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일하거나 쉴 때에는 그렇게 재미있었던 주짓수도 재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스파링을 할 때 상대방의 공격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에너지를 받는 날에는 집에 가는 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오히려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이런 상태에는 요가가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자친구 둘 다 번갈아가며 해당 시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는 말에 세쥬는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우리 세명은 주짓수 또한 하나의 명상과 같은 행위임에 틀림없다고 주짓떼라와 주짓떼로의 수다를 이어갔다.
스파링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생존적인 본능을 더 발휘해야 하므로 과거도, 미래도 있는 것이 아닌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이런 몰입의 순간들이 존재했다. 주짓수, 요가 그리고 서핑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몸과 몸이 만나서 하는 스파링,
매트 위에서 하는 움직임,
바다 위에서 하는 움직임
전혀 다른 장르 같지만 본질은 같다.
명상이라고 하면 단순 앉아서 눈감고 호흡하는 것만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상은 ‘몰입’ 그 순간 자체이다.
일본 최고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도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굳이 좌선을 하거나 산에 들어가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를 맞을 필요는 없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몰입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심신이 모두 일에 몰두해 있을 때 원망이나 미움 같은 잡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주짓수 스파링을 하는 그 순간, 우리는 몰입한다.
스파링을 할 때, 딴생각을 하는 그 순간 상대방에게 기술을 당하기 때문에 탭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늘 현재 그 순간에만 집중해야 한다.
매트 위에서 플로우를 타는 그 순간, 우리는 몰입한다.
매트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 한 곳을 응시하거나 온 발 전체를 나의 매트와 닿아있는 그곳에 의식을 집중시켜야 한다. 딴 곳을 바라보거나 생각이 과거 또는 미래로 흘러가는 순간, 닿아있는 발바닥이 흔들리고 만다. 결국 균형은 무너지게 된다.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는 그 순간, 우리는 몰입한다.
파도는 더 생존싸움이다. 현재 그 순간, 지금 밖에 없다. 드넓은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려면 우리는 그 순간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아가야 한다.
주짓수도, 요가도, 서핑도 좋은 스승님과 동료들이 있지만 결국은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 막상 배울 때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이 아니지만 혼자서 감각을 익히며 해등 동작들에 대한 느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하다. 장인 정신이 필요한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까.
초보자도 숙련자도 모두 같은 동작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디테일한 움직임들은 숙달된 고수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꾸준함이 동반되었을 때야 비로소 빛나는 것들, 한번 가졌다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 모두가 장인의 정신과 철학을 요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묵묵하게 사랑받지 않았을까 하는 분야들이다.
우리는 흐름에 맡겨야 한다. 의식이 개입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파링을 하려면 상대방의 움직임과 합이 맞아야 한다. 가장 안전하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힘을 빼고,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춰 나도 그 움직임을 거울처럼 따라가 야한다.
요가도 마찬가지이다. 매트 위에 호흡하며 동작에 나의 의식을 맡겨야 한다. 매트 위에서 내가 힘을 개입하거나, 무언가 하려고 애쓰는 그 순간 부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방향성에 맞게 가되, 나의 몸을 호흡에 맡겨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힘을 개입하거나 부자연스럽게 여기는 순간 자칫하면 근육이 뭉치거나 오히려 늘어나 신경통이 일어날 수 도 있다.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파도에 나의 몸을 맡겨야 한다. 그냥 파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저 방향성만 제시할 뿐. 우리는 필드 그 자체가 되어야 하고,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나의 에고가 개입하는 순간 바닷속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그저 멀리 바라보고 목표를 명확히 할 것, 그리고 방향을 정한 그 순간은. 믿고 흐름에 맡길 것
이것이 서핑을 잘하는 방법이자, 요가를 잘하고 스파링을 잘하는 방법이다.
주짓수, 요가, 서핑에서 얻은 깨달음들은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현실에서 얻은 문제나 고민을 가지고 스파링 매트위에, 요가 매트위에, 파도 위에 올라가면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준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 것
그저 흐름에 맡길 것. 목표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
그 방향을 가지고 순수한 의도를 가진 채,
모두 내려놓을 것
그게 우리가 흐르는 대로 성공적으로 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애씀 없이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주짓수, 요가 그리고 서핑을 사랑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