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은 청와대 알바 끄트머리에 우리 가족 모두에게 청와대 관람을 각자 신청하게 시켰다. 운 좋게도 식구 모두가 당첨되었다. 작은 딸이 당첨된 것은 아르바이트했을 때 만난 외국인들에게 주고, 내 당첨권으론 화우들과 청와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때가 5월이라 영빈관 내부를 관람하기 위한 줄은 엄청 길었다. 우리들은 영빈관 내부 관람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천천히 청와대 관내를 구경했다. 관저에 도착, 역시 줄은 길었지만 영빈관 앞 줄에 비하면 기다릴만했다.
줄을 따라 관저를 둘러보며 이 정도의 집이라면 대통령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가, 5년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의 직업 스트레스를 생각했을 때,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살 것인가? 초가삼간이라도 마음 편히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내 선택은 후자다.
그렇게 우리들은 사람들에 치여서 상춘재와 녹지원까지 둘러보고 다시 영빈관 주변에 왔다. 여전히 영빈관 앞엔 줄이 길었지만, 우리들 목적은 그림이었기 때문에 줄과는 상관이 없었다. 조금 한갓진 곳으로 가서 그림도구들을 꺼내 그렸다. 사람은 많지만 날이 좋아서, 멀리서 봐도 푸른빛을 발산하는 청기와는 눈부셨다.
한 시간만 그리고, 청와대를 나왔다. 청와대는 그냥 티비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외국 국빈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적 공간인 이곳 청와대가 아니라 일반 건물과 차별성도, 개성도 없는, 건물에서 귀빈들을 맞는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마음 아프고, 자존심 상한다.
이탈리아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는 '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가 개방된 것도 역사이고, 다시 청와대가 정치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해도 그것 역시 역사인 것이다. 다만 다음 세대에 어떤 역사로 기록될 것인가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