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3가와 4가 사이, 이 거리를 을지로 공구거리라고 부른다. 이곳 역시 조선 중기부터 궁궐과 관공서에 납품할 각종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루던 지역이었다. 1970년~ 198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만 명이 넘는 제조업 장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는 제조업의 심장이라는 뉴스 기사도 읽었다.
그런 을지로가 곧 대대적인 정비를 한단다. 지금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찾아갔다.
좁은 골목과 골목이 개미집처럼 요리조리 구불구불 이어졌고, 앞집의 처마와 옆집의 처마의 경계가 모호하고 허름하지만 그 속에서 수많은 시간들을 보냈을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 물론 그들의 피, 땀, 눈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묵묵히 생계를 책임졌을 가장의 무게만 어렴풋이 알 뿐.
이미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철거가 진행 중인 곳을 대림상가 3층에서 보게 되었다.
싹 밀어버린 공터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물 두 채와 포클레인과 그 밖의 장비들.
이미 거진 다 뜯겨나가 텅 비어버린 내부가 보이는 두 건물.
길어야 하루 이틀 아니면 오늘 안으로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옥상엔 초록이 한창인 나무가 살고 있었다.
나무의 터전인 옥상은 흙이 비옥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건물에 거주한 사람들에게 안식처 역할과 공기 정화를 담당했을 정도로 멀리서 보아도 그늘이 제법 무성했다.
처음 본 나도 나무가 눈에 밟히는데, 두고 간 주인은 오죽이나 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나무는 뜨겁게 삶의 에너지를 뿜어대고.
건물은 죽었고, 아직 나무는 살았지만 곧 건물의 운명을 따라가겠지.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인부들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인부는 포클레인이 건물로 이동하기 쉽게 건물 주변에 있는 건물 잔해들을 치우고.
내 손과 마음은 스케치북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멀어서 살아있는 나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지 못했지만, 그 나무를 보며 어반스케쳐로서의 역할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서울을 알기 위해, 여행을 갔을 때 사진 말고 그림으로 남기려고 시작한 어반스케치다.
그러나 이런 장소에 오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 반려견은 죽기 전에 초상화를 남긴다.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사라지는 것 역시 초상화처럼 남아있으면 좋겠다.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그 역할을 수행하는 어반스케쳐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