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조선의 왕들이 사랑했던 정원

비밀의 화원 같은 창덕궁 후원

by 삼도씨
[부용정과 연잎 2022]

오래 숨겨졌던 곳을 처음 찾았을 때의 신비한 느낌이란 이런 걸까? 창덕궁 후원은 꼭 비밀의 화원 같았다.

소나기가 그친 후 녹음은 더없이 푸르렀고, 간간히 부는 바람은 시원했고, 어디선가 지저귀는 새소리는 청아해서 머릿속까지 맑아진 느낌.

부용정 연못에 연꽃은 없어도, 비올 때 우산이 되어줄 것 같은 넓고 큰 연잎. 그 위에 오전에 내렸던 빗방울이 수정같이 맺혀있었다.


부용정 난간에 앉아 낚시를 했던 정조 임금이 느꼈던 부용정은 어땠을까.

네모진 연못은 세상, 연못 중앙에 둥그런 섬은 하늘. 신하가 잘못하면 그 섬 하늘로 귀향을 보냈다는 옛이야기가 깃든 이곳 부용정.

영조가 적은 영화당의 현판 글자는 유려했고, 왕실 도서관이었던 규장각과 서향각, 그 건물들 모두 각자 특별했지만 서로에게 풍경이 되어 더더욱 아름다웠다.


" 자, 진시황이 그렇게 찾았지만 찾지 못했던 불로초, 이곳을 지나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불로문을 지나가 볼까요?"

해설사의 말이다.


" 난 오래오래 사는 거 별룬데."


내 뒤의 여인이 남편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적당히 살고, 그저 건강하게만 살다가 갔으면' 하는 마음이라 그 여인의 말을 속으로 동조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의 역할 모티브가 효명세자였었다. 그 효명세자가 기거하며 공부했던 곳엔 단청이 칠하지 않은 한옥이었다. 해설사는 조선시대의 단청은 역할과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재료라고 하셨다. 귀한 단청은 아주 특별한 곳만 칠했단다. 단청이 가진 특별함은 벌레에 강하고, 습기에 강해, 건물이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아주고, 아름답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단다.

단청이 칠해진 건물을 보고 이쁘다고만 생각해봤지 다른 것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해설사의 말씀으로 단청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후원 입장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창덕궁을 돌아봤을 때 경복궁보다 규모가 많이 작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도 해설사분이 설명해주셨는데 창덕궁의 전체 삼분의 이가 후원이고, 나머지가 궐이기 때문에 작게 느껴진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후원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난다.


임진왜란 때 법궁이었던 경복궁은 불타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까지 이곳 창덕궁이 법궁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니. 그래서 인정전 앞마당에 품계석이 있었구나.


조선의 많은 임금들이 가장 사랑했다는 창덕궁 후원(비원).

조선의 임금의 업무 시간은 지금처럼 일주일에 52시간이 아니었을 테고, 바깥출입도 자주 못했을 테니 이곳 후원이 그들의 숨통이자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휴가는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작은 애가 서울 투어를 기획해서 3일간 서울을 종횡무진했었다.

다른 코스들도 다 좋았지만, 창덕궁 후원 투어는 가장 알찬 경험이었다.(사실 재작년 추석 창덕궁 후원 예약을 했지만 예약자가 많아 예약이 안 됐다) 후원에선 그림 그릴 시간이 없었던 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 후원을 꼭 한번 가보길 추천한다.

곧 가을이다. 이단풍놀이도 멀리 가지 않고 창덕궁 후원으로 오고 싶다. 그때도 예약이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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