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박물관에서 드로잉을 하다

특별한 공간, 국립중앙박물관

by 삼도씨
Screenshot_20220723-130606_Instagram.jpg [비가 오기 전, 국립중앙박물관 광장 2022]


대학 졸업반인 둘째가 초등 일 학년 때의 일이다.

뉴스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소식을 들었고, 이듬해 설 명절 때 시댁인 경기도에서 차례를 지내고, ktx를 타기 전 부랴부랴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했다.


" 엄마, 다리 아파요."


딸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인 나와 아직 역사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작은 딸.

그 사이에서 잠깐 어쩔 줄 모르던 큰 딸과 남편.

그때 보고 싶은 사람만 보는 게 어떻냐는 남편의 제안으로 큰 애와 나만 박물관 투어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누리지 못한 기회들을 딸들만은 누리게 하고 싶은 열성적인 엄마였다.

그랬던 내가 서울에 이사 오고 3년, 작은 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자고 말하기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특별전시회였던 '漆, 아시아를 칠하다', '사유의 방'을 보고, '이집트_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전시실 앞에 이르렀을 때,


" 다리 아픈데..."

" 이것도 봐야 되는데 "

" 엄마는 여기서 기다릴게. 혼자 보고 온나."


16년이 지나고 나서 엄마인 내가 다리 아프다고 할 줄이야.

그날 작은 딸은 이집트 전시회를 혼자 보았다.


서울에 살면 뻔질나게 갈 것 같았던 국립중앙박물관이었는데, 장마가 오기 전까지 찾아가지 않았다.

비가 오면 어반스케치의 특성상 할 수 없다. 그래서 장마 기간엔 미리 일정을 잡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 어디로 갈까요? '

' 내일도 비 온다죠?'

' 카페는 좀 그렇죠?'

' 박물관 어때요?'

' 안에서 그릴 수 있을까요?'

' 잠깐만 전화해볼게요.'

' 관람객들 동선 방해만 안 하면 된대요.'

' 그럼 내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요.'

장마기간 때, 매주 만나는 팀 단톡방 대화다.


다시 찾아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어반스케치를 하는 동안 잔뜩 찌푸린 하늘에선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단체 그림 사진을 찍고, 박물관 입구에서 들어가기 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박물관 안에 식당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토박이 서울 사람이랑 다니면 이런 좋은 정보를 알 수 있다)

비 때문인지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고, 대기자 명단에 우리 중 한 명의 전화번호를 주고, 식당 맞은편에 있는 발해관을 둘러보았다.

발해관을 다 둘러보고, 기다리던 순번이 되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이 안내된 곳은 창가 자리였다.

창밖엔 억수 같은 비가 내리고, 시원하고 쾌적한 박물관 식당에서 우리들은 비빔밥을 비볐다.

비빔밥으로 배를 채우고, 박물관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보며 밥을 먹었던 시간으로 마음을 채웠다.


먹고 배부르니 이제 다시 그릴 차례.

나는 작은 딸과 왔을 때의 사유의 방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 그 방으로 안내했다.

다시 보아도, 캄캄한 공간 그 중앙에 모셔져 있는 두 개의 반가사유상은 아름다운 자태와 은은한 미소가 더없이 자비로웠다.

금동 조각상의 유려하고 고운 선에서 느껴지는 조각가의 인고의 시간 앞에서 절로 겸손해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미리 확인하고 왔지만 그래도 사유의 방을 지키시는 분에게 다시 양해를 구했다.

관람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쪽에 앉아, 주변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개의치 않고 펜으로 반가사유상을 스케치했다.

평상시에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땐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다.


20220821_114534.jpg [광장 화단에 만발했던 아름다운 수국 2022]


유럽에선 박물관에서 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긴 한국. 혼자였다면 아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박물관에서의 드로잉.

함께 하는 화우들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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