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떠날 사람이 아니라 새로이 함께 살아갔으면 해요
️ 도시 화전민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화전민의 삶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의 터전이 계속 바뀌고, 했던 것을 거름 삼아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것> 나의 아이디어를 거름 삼아 강의 계획서와 작업물들을 만드는 일. 될 지 안 될지 모르지만 관공서와 SNS에 씨앗 뿌리듯 계속 나를 어필하는 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오직 나 자신을 믿어야만 지속 가능 한 일.
이렇게 내가 나를 거름 삼아 살다 보면 새롭게 나를 갈아주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불완전한 나로 버텨내기 힘들어지는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산을 바라보거나 햇빛에 데워진 강가의 바위에 몸을 벌러덩 눕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토록 확실하게 존재했던 것들이 내 몸에 닿아 있으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햇빛을 향해 양팔을 힘껏 뻗고 있는 수천 그루의 나무들과 땡볕이 쏟아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는 바위를 느끼고 있으면, 나의 고민과 불안은 모래알만큼 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딱딱해진 어깨에 힘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인데도 이 곳에서의 나는 서울에서와는 참 다르게 살아 있다고.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도피와 의존이 아니라 자연을 느끼는 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를 거름 삼아 살아야 하는 거라면,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나누고 싶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시의 창작자들에게. 자연에서 영감 받고 치유 받으며 표현하고, 마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연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저 지원금을 받고 머무는 객의 역할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은 도시 화전민들이 하나 둘 모여서 각자의 창작물을 꽃 피워내고, 그로 인해 마을 풍경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곧 떠날 사람’들 보다‘새로이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풍경.
그렇게 된다면, 나라는 사람의 필요와 쓸모를 돈으로 환산하고 증명해야 했던 이 전의 경험들은 완전히 새롭게 쓰여지겠지요. 잡초를 불로 태워 새로운 생명을 품어낼 거름을 만들어 냈던 화전(火田)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