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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Aug 08. 2020

흰 밥에 검은 김 같은 믿음


 


죽은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하얀 말티즈가 발랄하게 뛰어노는 카페 안에서 우리는 죽음과 치매와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뀐 사이, 수는 더 작고 조그맣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총명한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렸고,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잔뜩 적어두는 건 변함없었다.


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간 자주 아팠고, 월급의 절반을 병원비로 썼고, 신앙생활에 열중했다고 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나는 신앙은 딱히 없지만 무엇에 열중하고 있거나 무엇을 믿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상태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문득 돌아가시기 직전, 치매에 걸리셨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요양원의 할머니는 묘하게 차분한 얼굴로 앉아  머리를 곱게 빗고 계셨다. 임금님이  문 밖에서 금가마를 탄 채 기다리고 있으니, 몸단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스스로를 양반 집안의 규수라고 생각했다. 확고했던 그 믿음을 바탕으로 6.25를 지나 IMF를 겪고 밀레니엄까지 살아왔다. 21세기를 살면서 애초에 사라진 신분제도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었다. 그 믿음은 할머니의 사상이자 삶의 태도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부려먹기 일쑤였다. 그 결과 할머니의 말로에는 편애하던 아빠와 몸종 부리듯 했던 엄마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치매가 왔을 때 할머니는 임금님의 금가마에 탈 준비를 했다. 그간 자신이 부렸던 패악과 남들에게 준 상처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할머니가 늘 드시던 식사처럼 흰 밥에 김을 싸 먹듯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믿음이란 무엇일까. 매일 기도문을 적고 그것을 해석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살아 있을 때 진실한 글을 적어 나를 비추어 보며 나를 알아가는 것?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존재이고, 죽는 순간까지 각자가 믿는 것을 더욱 믿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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