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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Oct 05. 2023

너무 비싼 사과


낙과 / 정호승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햇빛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 사과가 너무 비싸다.

매년 사과 수확기가 되면 방문하는 사과 농장이 있다.

아이가 아기였을 때, 아는 분을 따라 과수원으로 놀러 갔다가 인연을 맺어 아이가 10살이 되기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방문하고 있다.

엄청나게 방대한 면적에 온통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아이는 그곳에 가면 과수원을 뛰어다니고, 과수원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따라다니며 놀았다.

매년 아이가 크는 걸 지켜봐 오신 농장 사장님은 아이가 가면 사과를 깎아 연신 입에 넣어 주시고, 사과즙도 먹어봐라 배도 먹어 봐라 하면서 엄청 반겨 주신다.

한 해 한 해 키가 커질 때마다 많이 컸다고 좋아하신다.

판매용이 아닌 가정용 사과를 한 자루씩 담아 놓고 파시는데 한 자루에 2만 원~3만 원 정도 한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사과를 좋아하기에 한 번 방문 시에 보통 열 자루 이상을 싣고 온다.

사장님네 사과는 꿀이 들어가 있는 맛난 품종이다.

주문받은 사과 자루를 차에 실어 주시고는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봉지 몇 개에 듬뿍 사과를 담아 주시곤 한다.

사과를 잘 먹는 아이를 보시면서 연신 웃음을 지으신다.

농장이 완전 외곽에 있다 보니 집에서 가려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다녀오려면 꽤 오래 걸린다.

하지만 거르지 않고 방문하는 이유는 사장님네 사과가 맛이 있어서인 것도 있지만, 아이를 유독 이뻐하는 사장님께 '아이가 이만큼 컸어요'하고 보여 드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둘이 만나 창고 한쪽을 개조해 만든 방 안에서 사과를 깎아 먹으며 할머니와 손자처럼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너무 따뜻해진다.

보통은 부사를 수확하는 11월에 방문한다.

이번 추석에 집에 가져갈 사과를 구매하려고 과일 가게에 갔더니 10개 남짓 들어 있는 사과 한 상자 가격이 7-8만 원 정도였다.

혹시나 사장님네도 홍옥이나 양광 품종이 있나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있긴 한데 올해 사과 작황이 너무 안 좋아서 선물용으로 판매할 것은 없다고 하셨다.

집에서 먹을 B 품은 있다고 작은 소쿠리에 25000원씩 팔고 있다고 하셨다.

홍옥은 맛이 없고 그나마 감홍이 맛이 제일 낫다고 하셨다.

올해 너무 덥다가 비도 많이 와서 작황이 형편없어서 사과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냥 기다렸다가 부사 철에 오라고 하셨다.

알았다고 하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과일은 사과만 드시는 편이라 비싸도 한 상자를 사 갔다.

가서 깎아 먹으니 먹을 만은 했다.

가을엔 사과인데 사과가 비싸서 너무 아쉽다.

그래도 다음 달엔 과수원을 방문해 사장님네 사과 맛을 봐야 할 것이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그렇기에 당신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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