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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레드넛 Jun 11. 2023

당신의 글이 망하는 이유, 다섯 번째

문장은 곧 옷이다

화려함의 시대다.


처음 오뜨꾸뛰르 패션쇼 무대를 봤을 때가 생각난다. 지금조차도, 오뜨꾸뛰르라는 철자가 맞는지도 확신이 없다. 검색해 보고서야 오뜨꾸뛰르가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정도? 확실한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는 것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지만, 그 세계는 이미 너무도 넓고 깊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사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더 화려하게, 이해할 수 없을 지경으로 더 깊고 깊게 파고 들어간 아름다움.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그들만의 세계로 느껴질 지경의 아름다움. 나는 그 아름다움을 직관으로 느끼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더 단순하다. 관념과 추상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무언가를 디디고서야 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것이 내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이다.     


그리고, 나는 글에서도 마찬가지의 관점을 견지한다. 오늘의 글은, 간결한 문장에 대한 글이다.




‘해병문학’이라는 기이한 서브컬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 적이 없다면 넘어가자. 이 ‘해병문학’에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로, ‘중첩의문문’이라는 것이 있다.     


해병문학에 등장하는 중첩의문문의 예시는 이런 식이다. 당신이 해병대 장병이고, PX-해병대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에 다녀와도 될 것인지를 선임에게 묻는다고 가정하자.    

  

일반인이라면? PX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해병문학이라면? 제가 PX에 다녀와도 되는 것을 물어도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선임 아무개 해병님께 물어보는 것을 여쭙는 것을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실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해병문학에서는 ‘64중 중첩의문문’ 운운하며 이 어법을 비꼬기 일쑤다. 얼핏 봐도, 쓸데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단 한 줄로 쓸 수 있는 문장이 두 줄이나 이어진다.     


내가 말하는 글쓰기는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에서의 문장이라면, 당신이 어떤 종류의 문장을 쓴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당신 특유의 글투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글쓰기는, 내 의견을 남에게 분명히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다. 

    

어휘가 글의 얼굴이고, 맞춤법이 글의 에티켓이라면, 간결하고 정리된 문장은 글의 의복이다. 당신은 글을 통해 제 뜻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간결한 문장은 전달력을 키운다. 누구라도, 단정한 의복을 입은 사람을 선호하지 않겠는가.     




우리 글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해도, 번역투라는 독특한 문체에 대해서는 들어보거나 직접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말에서 사용되는 어법은 아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는 문장들. 사실상 영어에서 쓰이는 어법을 직역한, 독특한 문장이다. 우리 어법에서 생략되는 어구가 그대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고, 강조용 표현이 그대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우리 입말의 영역에까지 미쳤다기는 어렵지만, 글을 봐 달라는 후배들의 문장을 보면 이런 표현이 깊이 침투해 있음을 느낀다. 나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글쓰기는 짧고, 간결한 문장의 호흡으로 이어진다. 길고 장황한 문장은 읽히지 않는다.     

 

오늘 글은 짧다. 의도적으로 문장을 최대한 간결하게 줄였다. 이보다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라는 지향을 향해 계속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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