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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10. 2020

단식원 마지막 아침, 눈풀꽃과 겨울

그래, 기쁨에 모험을 걸자!


눈풀꽃

       루이즈 글릭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마음 챙김의 시> 중 류시화 시인 번역



산들 단식원에서 보낸 10박 11일 마지막 아침, 겨울의 의미를 생각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글릭의 <겨울꽃>이 암을 통과하는 내게 울림이 되듯, 모든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면 참 좋겠다.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암을 비유하는 말 중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 '겨울나기'다. 인생을 흔히 사계절에 비유하는 건 어쩜 짧은 눈인지 모른다. 봄여름 가을 겨울. 나이를 따라 계절을 나누면 중년은 가을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암을 만난 순간 인생은 때이른 겨울이 닥친다. 계절의 마지막이 될 거 같은, 모든 게 얼어붙은 겨울 말이다. 그럼 그다음은?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사계는 순환한다. 춥고 긴 암이라는 겨울을 견뎌내면 다시 중년의  가을일까? 나이는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겨울꽃이 말한다. 겨울 땅속에서 다시 깨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노라고. 겨울꽃(수선화)은 이른 봄 자신을 다시 여는 법을 기억해 내야 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봄은 다시 오는 것이다. 





김장해서 좀 싸드릴 테니
며칠 더 있다 가요! 


어제 원장님이 인심 좋게 몇 번째 다시 말했다. 나도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느냐고. 진행 상태가 아주 좋으니 기왕 하는 거 단식을 2주로 늘려보란다. (단식이야 돌아가서 며칠 더 할 수도 있죠. 가보고 ㅋㅋㅋ) 저도 잔치 같은 김장 분위기도 즐기며 거들고 싶고 유기농 생배추도 씹어 먹어 보고 싶죠. 딱 11일 날 딸과 꼭 시간을 보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단식으로 비워지고 새로워진 내 오감이 김치 맛을 상상하고 출렁거렸다. 


"그럼 김장해서 김치랑 백김치 담글 절임배추 좀 부쳐드릴게요. 보호식도 그 후에도 백김치 드시면 좋아요."


와~~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날 수가! 일 벌이기 무서워 늘 김치는 조금씩 담가 먹는 게 내 습관이다. 수술 전 도시 텃밭 농사지어서 스스로 한 번 해본 게 딱 처음이자 마지막 김장이었다. 김장철이면 저 푸짐한 김장의 분위기가 그립기도 했다. 그러니 누가 김장김치 한 쪽 주기만 해도 감지덕지 행복이었다. 낼 모레 환갑인 주부 맞아? 


"가실 때 잊어버릴까 봐 냉장고에 미리 챙겨 놨어요."


김장김치만 해도 감사한데 이건 또 뭘..... 

오가피 잎, 엄나무 잎, 명이나물, 줄만 늘 절임에 뽕잎과 개망초 건나물 보따리였다. 보기만 해도 내 배가 불렀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주는 삶을 사느라 전용 포장 용기를 준비해 놓고 있었구나, 내 눈에 그게 쏙 들어왔다. 쓰던 플라스틱 통에 또는 비닐봉지가 아닌 가지런한 용기가 내가 이곳에서 받은 환대를 보여주는 거 같다. 


김보배(영순) 원장은 가족을 간질환으로 보내면서 효소에 접하게 된 경우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그는 병원이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책임지지 못했다. 그는 병원 밖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치유와 통합의학을 찾아야 했다. 자연식을 배우고 조리했다. 다양한 치유 경험의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의학의 새 길에 눈이 열렸다. 그러나 가족은 기다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후 그는 산야초 효소를 본격 연구하고 산들 산야초 효소 단식원을 개원했다. 




신갈렙의 <암, 투병하면 죽고 치병하면 산다>에서 솔개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다.


매목 수리 과로 분류되는 솔개는 우리나라 겨울 철새다. 최고 70~80세까지 사는 장수동물에 속한다. 그런데 장수하는 데는 조건이 있으니 40세쯤엔 아주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 그때쯤이면 발톱도 부리도 깃털도 노화로 인해 사냥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솔개가 해야 하는 결단은 이거였다.


사냥을 멈추고 죽은 동물을 찾아
먹으며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반 년 걸리는 갱생의 수행을 할 것인가?


갱생의 길을 택한 솔개는 산 정상 부근에 둥지를 틀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노화된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한다. 서서히 새 부리가 돋아나길 기다려야 한다. 새 부리가 돋아나면 그 부리로 낡은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런 식으로 낡은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버린다. (제대로 먹을 수 없을 테니 거의 단식인 셈이겠다.) 반년이 지나면 새 발톱과 새 깃털을 갖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된다. 다시 힘차게 사냥하며 30~40년을 산다. 



암이라는 고통에, 삶의 절망에 눌린 분들께, 희망을 쉽게 말하기는 조심스럽겠다. 솔개도 눈풀꽃도 겨울여행도 다 헛된 소리에 지나지 않을 상황도 있겠다. 다시 깨어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그래서 겨울나기다. 나무들이 겨울에 잎을 떨구고 몸을 가볍게 하듯. 겨울꽃이 축축한 땅속에서 한없이 견디듯. 루이즈 글릭의 목소리가 고맙고 솔개의 갱생이 고맙다. 암과 함께한 지난 6년간이, 지난 20일의 자연치유 여행이, 그리고 지난 10박의 단식기간이 고맙고 고마운 아침이다.


오늘 아침 체중도 어제와 같이 45.2㎏, 열흘간 2.8㎏만 줄었다. 모든 컨디션 오케이. 어젯밤도 6시간 잘 잤다. 어지럼증도 피로도 어떤 트러블도 느낀 적 없었다. 초기 미미한 두통이 스쳐간 거 같긴 하다. 어제오늘 똥 횟수와 양은 좀 줄어드는 거 같다. 암갈색 악취나던 똥이 아닌 녹황색의 점액질이 주로 나온다. 찌꺼기는 미미하고 똥물은 옅은 황토색이다. 모든 것에 감사 또 감사합니다!


긴 아침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침마다 한결같이 울리던 저 소리가 그리울 거 같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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