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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13. 2024

빈(Wien)이 어쩌구 베를린(Berlin)이 저쩌구

너무나 어려운 구간이라 33년 전에 쓴 편지를 보여주기로 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는 이 고사성어는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보여줄 수 있다면 최고의 글일 터.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특히나 덮어두고 살던 '흑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건 부끄러운 나를 보여주는 고통을 수반하니 더 그렇다. 풀어내기 만만하지 않아서 33년 전에 쓴 편지를 공개하기로 한다.


숙덕은 신혼 4개월 반 만에 빈과 서울로 떨어져야 했다. 선교지가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바뀐 것도, 덕은 한국에 남고 나만 떠난 것도,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성서한국 세계선교'만 생각하던 단체의, 아니 C의 결정이었다. '하나님 뜻을 따라', 준비도 대책도 없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1) 1991년 2월 19일 빈에서   


주님의 귀한 종 다니엘 목자님께   

       

할렐루야!

평생 목마르고 피곤한 사마리아 여인으로 살다 멸망할 죄인을 예수님께서 참 남편으로 만나주시고 구원하셔서 감사합니다. 오스트리아와 세계 캠퍼스를 목장으로 주시고, 동행하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가슴을 가진 멋있는 남편 다니엘 목자님의 아내로 저를 축복하시고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찬송 드립니다.     


저 없는 며칠간 어떠신지요? 충성스럽게 주님의 역사를 감당하고 계심 믿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지난해 베를린 생활 출발할 때처럼 아주 잘 먹고 잘 자고 있답니다. 신혼부부 같을, 두 선교사님과 한 방에 자는 불편 빼고는 다 좋습니다. D선교사님은 침대에서, 저와 E선교사님은 전기요 깔고 바닥에서 잔답니다. 좀 미안해서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베를린을 다녀옵니다.    

 

두 분은 제가 남편 떨어져 힘들까 봐 즐거운 얘기 하다가 조심하곤 하네요. 저는 조금의 슬픔도 시기심도 없이 평안하답니다. 당신은 늘 제 마음에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힘들겠어요? 길을 가나 잠을 자나 밥을 먹으나 나의 가장 든든한 빽이요 친구요 보호자로 동행하고 계시니깐요. 떠나와서 생각하니 당신이 제게 하신 모든 것들이 얼마나 너그럽고 사랑과 배려가 충만했나 더 깨닫게 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받는 아내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E가 어디서 들었대요. “두 분 사이가 야곱과 라헬 같다면서요?” 숨길 것도 없을 거 같아 대충 얘기했더니, 첫마디가 “드보라 선교사님 너무 행복한 분이시네요”였습니다. …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인도하심,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기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을 보여주셨습니다. 오스트리아 개척 역사에 우리 가정이 축복과 은혜받은 위치임을요. D,E 부부와 며칠 사귀며, 마음 주어 동역할 분들임을 발견했습니다. 권력 싸움 같은 것은 우리와 관계없을 줄 믿습니다. 영광 같은 건 모두 이분들 주고, 저는 동역의 거름으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어제오늘 온통 방 구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학교나 신문에 난 것들이 너무 비싸요. 어제는 겨우 한 군데 전화해서 갔습니다. 전철에 버스까지 타고 갔는데 너무 한적해서 차 없인 안 될 곳이었습니다. 월세 2,500실링이었는데, 집안엔 노인과 남자들만 살았습니다. 질겁하고 나왔는데 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있어 더욱 질려 버렸고요. 아무리 싸도 3,000실링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같이 살 사람 구하는 한 여학생이 다시 전화하라 했는데, 그거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다리와 발이 아플 정도랍니다. 기도해 주세요.       

   

사랑하는 목자님! 저는 밥맛이 무지 좋습니다. 그런데 어제야(도착 4일 만에) 처음으로 똥을 누었답니다. 몸이 예민한 거죠. 생각보다 날씨가 꽤 춥습니다. 두꺼운 내복 입고 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E선교사님의 파카를 입었습니다. 겨울 외투가 필요함을 봅니다. 이불도 얇은 편이라 이 집 이불을 주겠다는군요. 물가도 비싸며, 학교식당밥도 비싼 편이고요. E와 둘이 별 거 안 먹었는데 10실링 들더군요. 샌드위치 싸 다녀야 하나 봅니다.

당신의 아내 드보라.




2) 1991년 3월 7일 서울에서          


나의 사랑하는 아내 드보라!    

 

사랑하는 당신의 모습을 본 지가 벌써 20일 흘렀습니다.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떠난 당신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하였습니다. 그날 밤은 캠프에서 베개를 적시다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당장 사는 데 필요한 짐을 챙기러 당신과 살던 집에 갔습니다. 당신이 없는 빈 방이 참으로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와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드보라! 당신과 함께 살았던 지난 몇 달이 꼭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편안한 아내요, 훌륭한 동역자요,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신부입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의지하고 따라 주어서 제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합니다. 당신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6개월이 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C께 말씀드려 가을학기 출국으로 승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다른 소리를 자주 하시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고자 합니다.(당신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캠퍼스는 개강했습니다. 아직은 데모가 없고 조용해 양들 심방하고 피싱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공대 형제님과 고정 일대일을 확보했습니다. 대학생활에 열심히 도전하고자 하는 양이라 성경공부도 적극적입니다. 이분을 중심으로 봄학기 개척 역사를 섬기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드보라! 몸무게는 당신이 떠난 지 보름 만에 1.5킬로 줄었습니다.(73.5킬로) 끼니는 거르지 않았는데, 대책이 없습니다. 소식은 당신 생각하며 틈나는 대로 써 두었다가 매주 한 번 보내겠습니다. 당신의 남편 다니엘              



3) 1991년 3월 16일 빈에서      

    

나의 사랑하는 남편 다니엘 목자님께     

     

이번 한 주간은 지치지 않는 방향으로 살았습니다. 간식을 싸가서 허기지지 않게 했고, 오후엔 잠시 쉬고, 여섯 시간은 잤습니다. 금방 배가 고파 변함없이 잘 먹구요. 독일어 수업은 재미있고 할 만했습니다. 라디오 뉴스 듣고 받아 적는 것 외엔 무리 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반 친구 베로니카에게 수영을 배웠습니다. 지지난 주 한 번 가고 2주 만에 갔습니다. 좀 비싼 데서 목욕하는 값이면 수영할 수 있더군요.      


오늘은 종일 독서했습니다. 독일어 어린이 책을, 수많은 새 단어를 익히며 한 권을 독파했습니다. 수업하며 단어가 달리는 것을 느꼈거든요. … D가 기쁨과 은혜 가운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대신, 안부와 함께 몇 가지 당부해 주셨습니다. … 반드시, 독어 기초, 운전면허, 그리고 한 가지 기술을 배워 오시라는군요. 기술이란, 허드레 아르바이트 말고, 이곳에서 직업을 가질 방향 가운데 하는 것입니다. D가 택시기사 하는 것처럼 장기적인 것입니다.     


이곳은 평신도 선교사의 길이 있습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등록하고 어학을 합니다. 그 후 직업교육(유료)을―필요하면 오래―받고 취직할 문이 열려있나 봐요. 자격증이 있으면 더 좋고, 이론적으로나 알고 있는 것이면, 이곳에서 다시 하면 수월하겠죠. 월급을 받고, 세금 내는 생활을 4년 이상 하면 시민권이 나온다는군요. 유학생으로 왔지만, 취직하면 노동허가서를 받고, 여권도 비자도 모두 ‘노동’으로 바꿀 수가 있다는군요.     


공부는 할 수도 있고, 학교에 적을 두어도 되고. D는 장기적인 방향 가운데, 등록만 해두고, 노동허가서 얻으며 일하고자 하나 봐요. E가 가져온 돈은 떨어져 가고 경제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 직업 가능성을 알아볼 테니, 목자님께서도 여유 있게, 하실 수 있는, 혹은 할 만한 일을 생각해 보도록 하세요. D는 피자 만드는 기술, 자동차 정비, 용접, 컴퓨터 등을 얘기했습니다. 생소하지만, 이곳에 필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이 잘 못하는 일들이면 좋겠지요. 여기도 실업문제가 있고, 좋은 일을 외국인에게 우선으로 줄 리가 없지요. 찾는 자에게 길이 있는 것이니, 기도 가운데 지혜와 방향 얻을 줄 믿습니다.


보고 싶은 목자님!

오늘 낮 라디오뉴스에서 남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서 학생 데모가 있었는데 1만 명 이상 모였다네요. 골자는 노태우 퇴진, 국회의원 6명 어쩌구, 주택건설 부정 어쩌구 했습니다. 이곳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인 걸 보면 큰 데모였던 것 같습니다. 목자님들이 또 심각해지겠군요. 지난 수요일 이곳 캠퍼스에서 미팅하고, 저는 구경만 했습니다. 독어 가르쳐 달라고는 얼마든지 하겠는데, 어떻게 성경공부로 인도할지.    

 

사랑하는 목자님! 돈이 없어 고생스럽겠지요. 와서 생각하니, 너무 매정하게 제 살 궁리만 하고 챙겨 온 거 같습니다. 이곳은 너무 모든 게 비싸고 돈 가치가 없어 신경질 날 땐, 도로 한국으로 부쳐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선 제법 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죄송스럽습니다. 당신의 드보라.




4) 1991년 6월 한국에서 보낸 C의 편지


사랑하는 드보라 선교사님께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을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하나님께서 가장 패역한 시대, 이데올로기의 혼란 가운데 방황하는 시대, 예수님의 보배피로 구원하시고 세계 캠퍼스 개척의 목자요 선교사로 부르신 것을 감사합니다.


전화를 받고 여러번 생각한 결과 인간적으로는 빈에 안정되길 바라는 생각이지만 신앙적으로는 개척의 땅으로 가는 게 성령의 뜻이라 믿었습니다. 다니엘 목자와 대화한 결과 장기적으로 폴란드에 가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당분간 그곳 D선교사의 수고와 기대를 저버리기 어렵지만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H선교사님과 더 구체적인 기도지원 받기를 바랍니다. 빈에는 대전에서 오늘 두분이 가고 또 청주에서 한 선교사가 수속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센터에서도 두 간호원 두 사람이 선교사로 수속하려고 하니 오스트리아는 걱정 안해도 됩니다. 주안에서 강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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