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Feb 12. 2024

꿀벌이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신구약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여성지도자 사사 드보라를 생각한다

      

결혼과 함께 내 이름은 ‘정 드보라’가 되었다. 단체에는 개명하는 문화가 있었는 데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 성을 따르게 해서였다. 지금이야 서양에서도 남편성 안 쓰는 여성이 있고 한국에서도 엄마성을 물려줄 수 있게 됐다. 그땐 그러나 유교의 ‘여필종부(女必從夫)'나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욕해도 남편성 따르는 건 기독교 문화라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 드보라 사모님, 선교사님, 또는 목자님이라는 호칭 뒤로 ‘김’도 ‘화숙’도 사라져 가는 이름이 되었다.   

  

개명은 졸업이나 선교사 파송을 앞둔 사람들에게 담임 C가 주는 ‘축복’이었다. 각 사람의 캐릭터나 기도제목이 반영되었던 것 같다. 아브라함, 사라, 마리아, 바울 등을 본받고자 했고 순종, 충성, 겸손 등 ‘훈련용’ 개명도 있었다. 같은 이름이 많을 수밖에. 한 사람이 여러 번 개명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구약 사사기(士師記)의 드보라로 내가 호명된 건 대학 졸업 즈음이었다. 동기들이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감사의 소감글을 발표했을 것이다. 새 이름 새 출발을 축하하는 분위긴데 나는 좀 다른 기분이었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진 이름, ―언어는 없었지만마냥 흔쾌히 받긴 어려웠다. 다른 이름을 원한다거나 선택권을 주장한 건 아니었다. 맘에 걸리는 건 하나, 드보라 같은 여자를 좋아할 남자가 없을 거라는 예감이었다.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는 꿀벌  


사사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왕권과는 다른 아주 독특한 이스라엘의 지도체제였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야빈에게 20년 동안 억압받으며 부르짖은 결과로 부름 받은 사사였다. 그는 '랍비돗의 아내' 라 소개되었는데 그 이름 드보라는 '꿀벌'이란 뜻이었다.


남성 중심 족보 자랑 잘하는 성경에 위대한 선지자 드보라의 족보가 나오길 기대하진 말자. 그래도 그 남편 내력은 나올만하지 않나? 그런데 없다. 상상해 보라. 성별 이분법이 칼 같은 공동체에서 남편 있는 여자가 민족의 지도자로서 40여 년 태평성대를 이끌었다. 그 남편 랍비돗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림자 외조를 했을까? 자주 다투었으려나? 혹시 장수 바락이 랍비돗과 동일 인물은 아닐까?   

     

에브라임 산간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가 평소 드보라의 업무 공간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 나와 재판을 받았다니, 웅장한 건물이나 장막이 따로 없는 부드러운 리더십의 상징처럼 보인다. 야빈이 쳐들어왔을 때 드보라는 장수 바락을 불러 임무를 맡겼다. 바락은 드보라를 신뢰하는 소심한 남자였던 거 같다. 드보라가 함께 가면 가고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가겠다 약속했고, 이 전쟁의 영광이 야엘이라는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란 예언을 덧붙였다. 바락은 드보라의 말을 따랐고 함께 다볼산으로 가 시스라 군대를 쳐서 크게 이겼다. 도망했던 적장 시스라는 드보라의 예언대로 야엘의 장막에 숨어들었다가 죽임 당했다. 야엘도 보기 드문 용감한 여성이었다. 야엘을 축복하며 드보라가 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꿀벌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어릴 적 내 이름에 대해 물었다가 실망한 기억이 있었다. 화숙(和淑), 뜬금없는 조합이지만 ‘평화롭고 맑은 호숫물’이라 둘러대면 좀 어떤가. 엄마는 범띠 아들일 거라 믿었는데 딸이라 실망했다는 말로 시작하곤 했다. 아빠는 ‘여장군 났다’ 했다지만 이름도 짓지 않고 나돌았단다. 면에서 인구조사인가 나왔는데 아기를 등록해야 했다. 아빠가 와야 이름 짓는다는 엄마를 무시하고 면서기가 “언니 이름 따라” 멋대로 적은 게 화숙이더란다.     

‘어떻게 남의 딸 이름을 그렇게 멋대로 정해버려?’

‘아버지는 면서기 멱살을 잡고라도 고칠 생각을 왜 안 해? 아들이라도 그랬을까?’

‘참 쉽기도 해라. 그래도 후남이 분남이 귀남이 아닌 게 어디냐고?’

어린 내게 이 세상은 처음부터 해도 해도 너무한 부조리요 부정의 덩어리였다.      

 

결혼 후 정 드보라로 살며 사사 드보라 이야기가  내 인생의 은유일지 모른단 생각을 하곤 했다. 여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던 남성 중심 사사 시대에 드보라는 유일한 여성 사사로 쓰임받았다. 어떻게 남편이란 장막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신구약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여성리더 드보라, 그 곁에 있던 랍비돗과 소심한 장수 바락. 문학 중의 문학이요 예술이자 복음이었다.

      

나는 한 소심한 사내를 사랑하고 순종하겠다 서약한 여자였다. 드보라도 랍비돗을 순종하겠다 서약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랍비돗은 드보라가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부담스러운 아내가 될까 늘 검열하는 아내였다. 사내 마음 울린 여자의 자격지심이었다. 그땐 언어가 모자랐지만, 나는 한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자유를 꿈꾸는 여자였다. 속한 단체 안에서 다만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던 셈이다.

      

사사 드보라는 남편이 부담 느낄세라 스스로 작아지려 노력했을까? 랍비돗은 잘 나가는 지도자 아내 때문에 기가 죽어 살았을까? 바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 해괴한 주장을 할 줄 그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민족의 지도자 드보라가 집에선 남편 심기 살피는 순종 코스프레 했을까? 아무리 상상해도 작위적이며 위계적인 그림이다.

      

성별이분법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라면 드보라를 부르고 쓰신 하나님은 모순덩어리가 된다. 드보라의 지도력을 따른 남자 바락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한 게 된다. 용감한 야엘은 또 뭐가 되는가?

  

드보라도 좋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거창한 지도자보단 작은 '꿀벌'이 더 좋아졌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 하지 않던가. 그래, 나는 그런 존재였다! 꿀벌, 꿀벌이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전 05화 질문 여자 눈물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