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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Feb 08. 2024

우리 결혼 여기서 없었던 일로 해요

결혼식이 끝나니 질문이, 내가 늙어서도 이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까?

올가을이면 숙덕 부부는 결혼 34주년이 된다.


처음 본 그날로부터 치면 40년을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다. 성인이 된 세 아이들이 각자 짝꿍을 만나는 이야기며 큰아들이 결혼식 준비하는 모습을 재미있는 영화인양 감상하는 중년이다. 지나간 내 결혼이 종종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게 영화 보는 맛을 더한다. 아이들에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겠지만, 내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판타지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도 모르겠는, 여전히 진화 중인, 결혼은 생물 같다.      

 

“결혼할 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라. ‘내가 늙어서까지도 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 외에 다른 건 모두 일시적일 뿐이다.”      


결혼에 관해 니체가 한 말이란다. 이 철학자는 결혼 바깥에 머문 독신주의자라 이런 통찰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대화 따위 없이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며 살기도 하는 무지막지한 세계가 결혼 아니던가. 결혼 전에 질문하라지만, 안 해보고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대화가 밥 먹여주냐 큰소리치는 사람도 나는 여럿 보았다. 질문은 없고 답은 무성한 세계가 바로 결혼 아닌가 한다. 니체는 일찍이 결혼의 지속가능성을 질문했던 게 틀림없다. '결혼'이라 쓰고 '대화'라 읽으면 되겠다.

      

“내가 늙어서까지도 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결혼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묻지 마 결혼이고 ‘아멘’의 성찬이었다. 말 못 하고 죽은 귀신은 뭐 하다 그렇게 늦게 나타났을꼬. 하필 잔치가 다 끝났을 때 그 귀신이 말하기 시작했다.       


    

내 결혼에 없던 것들     


결혼식에 관해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게 하나도 없었다. 실화다. 대학 3학년 때 처음 만나 6년 만에 신랑신부가 될 때까지 사랑고백도 연애과정도 프러포즈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원하면서도, 왜 서로여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우리 결혼을 결정한 공식 과정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한 선교단체 담임 목사C였다. 약혼도 결혼도, 날짜, 시간, 장소, 그리고 세부 순서까지 주례자인 그가 결정했다.   

   

식장이 어떻게 ‘백합예식장’으로 결정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당시 선교단체 회원 결혼식이 주로 거기서 있었는데 가까워서였을 것이다. 식은 오후였지만 신부는 꾸밈노동을 위해 아침 일찍 식장에 가야 했다. 생전 처음 두꺼운 피부화장에 눈화장에 속눈썹이 붙여지고, 귓불엔 귀찌가 찝혔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올림머리에 면사포를 쓴 후 신부대기실에 앉아야 했다. 신랑은 느긋하게 아침 먹고 목욕탕을 들렀다가 나타나 합류했다. 예식장이 하라는 대로 우리는 따른 것이었다.     


신랑이 어깨를 쫙 펴고 혼자 걸어가 기다리면 눈을 아래로 향한 내가 아버지 손을 잡고 천천히 입장했다. 경남에서 대절버스로 올라온 아저씨들이 피곤하고 지루한 얼굴로 식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경구절을 따라 혼인서약이 있었다. 신랑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한 후 주례가 나를 향해 물었다. “덕 군을 남편으로 맞아 믿음 안에서 사랑하고 위로하고 존경하며 순종하여, 아내 된 도리를 다하기로 서약합니까?” 내가 들릴락말락 한 소리로 “아멘”이라고 답했다.      


이런 서약에 대해 내가 미리 고민하고 결정한 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 결혼식에서 본 대로 답했을 뿐이었다. 그날 그 낯선 기분은 뭐였을까. 설명할 수 없는 무거운 예감에 짓눌리면서도 나는 입을 앙다물고 가만히 따르는 신부였다.      


       

결혼의 의미는 뭘까     


창세기 1장 28절이 주례사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4 두  가득 ‘사명’이 수십 번 반복되는 설교였다. 성경 공부로 알던 내용인데 내 결혼의 지침이라니 떨리는 마음으로 들었다. 요약하면 이랬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후 인간을 사명으로 축복했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본분이 바로 사명이다. 사명 없는 결혼은 동물 수준이다. 첫째, 많은 자손을 낳아 번성하는 사명이다. 아담이 타락한 후 의미가 달라져 영적인 생명의 열매를 맺으라는 뜻이다. 둘째,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이다. 정복하고 다스린다는 건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를 말한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또 회개의 복음을 증거할 때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다."  

  

내 미래가 보이는가? ‘다산의 여왕’ 쯤 되겠다. 육적 자녀 영적 자녀 많이 낳아라, 장밋빛 미래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는 없었다. 니체 같은 질문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늙어서도 대화하는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주례였으리라. 결혼의 의미는 둘이 한 몸이 되어 오직 사명, 사명, 사명, 그거였다. 다른 지부 담임 목사 넷이 우리를 둘러서서 축복기도를 했다.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 중심”,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동역하는 캠퍼스의 목자”, “상처받은 양들의 목자”,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에 썩는 밀알”이라는 동어반복이었다.      


시집 쪽 어른들한테 절하는 폐백이 이어졌다. 전통 한복에 한삼 족두리로 갈아입혀진 나는 부축을 받지 않곤 절할 수 없었다. 신랑이 나를 업고 방을 한 바퀴 돌 때 미끈거리는 옷자락 때문에 나를 떨어뜨릴 뻔했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웃었지만 나는 얌전 떠느라 죽을 맛이었다. 앉았을 때 신랑보다 낮은 자세를 유지하느라 애썼더니 삭신이 더 고달팠다. 이른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은 것 없이 하루해가 저물었다.  


        

나는 당신에게 뭐죠?     


‘이거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결혼 맞나?’

‘신부 역할 신랑 역할 연극이 끝난 걸까?’

‘이 남자는 왜 나와 결혼했을까?’

‘난 어쩌자고 순종을 서약했지?’…      


사람들이 다 돌아간 예식장 구석에서 공항으로 데려다 줄 오빠 차를 기다리는데, 내 안에서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명의 이름으로, 믿음의 이름으로, 밀물처럼 몰려왔던 거창한 행사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공허하기만 했다. 알 수 없는 무게에 짓눌린 나와 달리 신랑 얼굴은 평안하고도 행복해 보였다. 공항 가는 내내, 그리고 비행기에서도 나는 그와 다른 세계에 있었다.      


강릉행 비행기는 하얀 구름 위를 날고 있는데 나는 먹구름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신랑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상상한 적 없는 낯선 기분, 낯선 질문으로 나는 침묵에 잠겨 들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한 가슴으론 죽을 거 같아 그를 향해 숨을 내뱉었다.      


“나는 당신에게 뭐죠?”

덕이 나를 향해 고개를 흠칫 돌렸다. 무슨 말이냐 묻는 얼굴인데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무엇인지, 그는 내게 무엇인지, 가슴이 자꾸 물으니 내뱉은 것뿐이었다. 언어가 모자라긴 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내쳐 말했다.     


“왜 나하고 결혼했어요?”

“우리 결혼 여기서 없었던 일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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